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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4 vol. 99
칼 럼“ A 시 이 야 기 ”
초점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사법제대로보기 (주)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의 확정!
기획연재‘남북기본합의서’ 법적성격에 관한 비판론적 검토
                   의
특별기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Snyder v. Phelps (2011) 판결
2012 3 4 VOL99

                                                            CONTENTS

                                                                    칼럼    “A시 이야기” _정재형   2

                                                                    초점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_한상희     6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_서기호     22

                                                              사법 제대로 보기   (주)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의 확정 _김태욱        26
                                                                          국립대학교 기성회비 반환 판결의 의의와 과제 _하주희         44

                                                              법률 바로 세우기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개정에 대한 의견 _김영준              54

                                                                    시론    한국 사회, 그리고 비극성과 아이러니 _이광택      64

                                                                  기획연재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관한 비판론적 검토 _이석범          70

                                                                  특별기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Snyder v. Phelps(2011) 판결 _장주영   78

                                                                민변의 활동    『나의 논어』- 홍사중, 이다미디어(2004) _정리 : 좌세준   92
                                                                          온누리의 평화는 강정으로부터-제주 국제평화대회에 다녀와서 _권정호            107

                                                                성명 및 논평   성명 / 논평   112
                  1   2
                  3   4

                 1. 제주서 열린 제주 국제평화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2.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금속노조 2012
                    투쟁선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3.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학생위원회,
                    한국대학생연합관계자들이 1월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표지의 제자는 한승헌 변호사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열고 기성회비 규탄 및 반값등록금을 촉구하고 있다.
                                                                          삽화는 김규정·안세호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4. 지난 3월 1일 광화문에서 열린 유권자 독립 및 참여선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서기호 전 판사
[ 칼럼 ]
                                                                  최후의 심판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후보자 추천이 사천이 아닌 공천이 되어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선
                                                                  거철이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전에 만난 상담 손님이 날 더러 물었다.‘변호사님은 출마하지 않나요?’‘000당 공천을 받으면 출
                         “     시 이야기”                             마할게요.’라고 답했다. 사실 이 썰렁한 농담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그 당의 공천
                                                                  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다는 것으로 동문서답 아니면 우문현답식 인사치례가 오간 것이다.
                                                                   남한의 어떤 도시(A시라고 하자)는 지금 30대에 이른 사람이 출생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야
                                                                  당후보도 당선시키지 않은 독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무척 재미가 없는 곳
                                                                  이다. 투표율도 전국에서 늘 꼴찌 수준이다. 기자들도 지역 선거보도에 있어 공천이 끝나면 더 이상 기
                                                                  사거리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선거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싱거운 일이다. 어느 정당의 그 후보가 과연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할 수 있을지, 나머지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정도를 득표할 수 있
       글 _정재형 회원                                                  을까 하는 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선거철이 되면 각 당은 후보자를 정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봄이 왔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만물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편다.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움이 아니      A시에서는 역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어떤 정당은 대기
                                                                                                                남한의 어떤 도시(A시라고 하자)는
      라, 물기를 품은 부드러움이다.                                           번호표라도 주어야 할 정도로 무척 긴 줄이 생기는데 반해, 다른
                                                                                                             지금 30대에 이른 사람이 출생할 때부터
       점심을 같이 먹자는 동창의 전화를 받고 상담 손님을 보내고 팔공산으로 차를 몰고 간다. 친구의 직     당은 줄이 아예 없다. 그래서 어떤 정당에서는 공천의 전 과정에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야당후보도 당선시키지
      장이 팔공산 자락이라 오랜 만에 혼자서 산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선다. 불과 30분 정도의 시간에 도심    걸쳐 치열한 경쟁과 무수한 잡음이 생기는데 반해 다른 당은 고
                                                                                                            않은 독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에서 전원으로 내가 자리한 공간을 바꾸었다. 파계사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뽑아 팔공산     요하기가 적막강산이다. 공천을 신청하는 후보들이 많으니 그
                                                                                                             선거철이 되면 무척 재미가 없는 곳이다.
      자락에 머문 봄기운을 만끽한 후 다시 산을 내려온다. 불로동을 지나 아양교를 건너 동대구역을 거쳐      당의 공천 결과 무척 경쟁력 있는 후보가 정해질 것이라고 기대
                                                                                                              투표율도 전국에서 늘 꼴찌 수준이다.
      사무실이 있는 범어동으로 돌아온다.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대개의 경우 그 기대는 배반된다. 그
       신호대기를 위해 멈춘 차안에서 문득 주변의 기운이 범상치 않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갈 때는     정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몰랐는데 가로 곳곳에 출마자의 얼굴 사진과 선거용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렇군, 18대 국   것임을 경험상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공천권을 쥔 자들은 소위 ‘본선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야
      회의원 선거의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 오늘이군.                              말로 현재 권력의 수족이 될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에 불과하고 또 현재 권력의 비율에 적합한 나눠먹
                                                                  기가 성행한다. 그러니 유권자에게 내미는 공천 받은 자의 명함은 무척 초라하다. 또 한편 다른 정당은
       아시다시피 선거는 피치자가 치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후보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       제발 후보가 되어 달라고 사람들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그 결과 이 당이던 저 당이던
      해 그 선택을 유도하는 각양각색의 정치적 모양새를 연출하려고 애쓴다. 그 과정을 고급스럽게 표현하      투표용지에 기재된 후보들은 별 영양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이 선거 주기에 맞추어 되풀이
      면 민심을 읽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밑바닥의 표심이 정당권력을 통해 정책에 반영되고 대의정치라는       된다. 이런 선거가 한 세대를 통해 되풀이 되면서 이제 A시의 지역정치는 척박함을 넘어 부재의 지경
      틀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에 이르렀다.
       선거철이 되면 정당의 후보추천에 있어서 정당권력을 쥔 자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하수인을 선
      거에 내보내려는 개인적인 이익동기가 작용하는 한편,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나아가 정당의 존립을 위        A시의 선거는 ‘어떤 정당으로부터 공천 받은 후보’, ‘어떤 정당의 후보가 되려고 노력했던 후보’, ‘당
      해 대중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한 괜찮은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2가지 상반된 압력이 작용한다. 정당     선되면 어떤 정당에 복귀할 후보’들이 일합을 겨루는 판이다. A시의 시민들은 자기 지역의 국회의원,
      의 후보의 추천과정에서 개인적 욕심을 배제시키고 공정성을 견인해 내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구청장, 시의원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들이 속한 정당을 알 뿐이다. 오죽하면 어떤 신문은 A시




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칼럼 _A시 이야기   3
의 국회의원은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임명직’ 공무원이라고 비아냥할까. 후보자 추천을 고무줄을 늘          고 있다. 암울하게도 선공후사할 정치인으로서 자질을 충분히 가진 A시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 분이나
     이듯, 아이들 땅따먹기 놀이 하듯이 해치울 수 있을까? 오죽하면 ‘토종 TK’, ‘서울 TK’라는, 어떤 당의   그 대리인 앞에 긴 줄을 서는 괴로운 선택을 하거나 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텃밭’이라는 표현이 등장할까?                                               언제까지 A시 시민들이 참한 젊은이들의 좌절을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또 이런 사정은 선한 정치인
       A시의 장래는 우울하다. 사실 정치라는 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A시의 시민들이다. 그들의 기형적         의 진입과 훈련을 포기케 하는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표출
     인 선택이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니 알면서도 즐기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제약하고 왜곡한다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권부로 불렸
     는 마조히즘의 경지에 까지 이른 것 같다. 각종 경제지표에서 만년 꼴찌를 기록하는 시민들이 대한민          던 A시는 정치가 없고, 정치인이 없다. 암울하게도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A시의 미래 세대는 인격화
     국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정서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엉뚱한 결과를 반복 시청하다보니 이곳          된 정치권력에만 맛들인 시정잡배에 불과한 사람을 그들의 리더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아
     에서 40년도 훨씬 넘게 살아온 나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헷갈리기까지 한다.               이들을 다른 도시로 피난성 유학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고, 곧 젊은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지역 풍토와 좌회전을 금지하는 A시의 정책도 권력을 쥔 그 분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괜한 의
       한편 ‘소외’를 이야기하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A시에서 벌어진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정치인         심도 해본다.
     들이다. 역설적으로 선거철이 되면 가장 굴욕을 맛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신의 성과와 치적
     에 관계없이 자기 윗선의 입맛과 권력의 향배라는 우연한 사정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겨야 하는            지난 주 A시에서 ‘지식인 500인’ 선언이라는 것이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교수, 의료인, 변호
                            불우한 사람들이다. 그가 아무리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사들이 모여서 성명을 낸 것인데, 요지는 이렇다. 한 당만 찍지 말고 다른 당도 찍어주자는 것이다. 희
                            하더라도 자신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지역을 위해 불철주야 노       한한 원인에 걸맞은 희한한 대책일 수밖에 없고 이런 유치한 선언에 귀한 이름 석 자를 올려야 하는 참
서울에 계시는 그 분의 ‘속내’가          심초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천과정에서 유효한 득점요소          담한 지경에 이르러 몇 자 적었다.
어떠하고 어떤 ‘애로’가 계실까,          가 되지 못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분들은 자신
그 분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천착할   의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에 관하여 항상 고민해야 하는 외로운                                           천지자연은 순환하고 만물은 흥망성쇠의 과정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이다. 또 자신이 선 줄이 과연 확실한가, 다음 선거에서도                                           을 거친다. 그런 자연법칙에 기대어 A시도
즉 자생적인 권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간택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외생변수에 자신의 명운을 걸어야 하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화사한 봄볕
불임 정치인이고 그런 분들이             니, 참으로 답이 안 나오는 팍팍한 삶의 연속일 것이다. 이러다                                              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마른 가지에
지도하는 도시가 바로 A시이다.           보니 이 분들의 관심사는 지역 유권자의 지지가 아니라, 서울에                                                잎을 피우고 꽃부리를 밀어 올리
                                                                      천지자연은 순환하고 만물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계시는 그 분의 ‘속내’가 어떠하고 어떤 ‘애로’가 계실까, 그 분                                              듯이, 때가 되면 변할 것이다. 다
                                                                       그런 자연법칙에 기대어 A시도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천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자생적인 권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                                                 양한 색깔의 꽃이 만개하는 봄
                                                                      화사한 봄볕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마른 가지에 잎을 피우고
     정치인이고 그런 분들이 지도하는 도시가 바로 A시이다.                                                                            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A시의
                                                                        꽃부리를 밀어 올리듯이, 때가 되면 변할 것이다.
                                                                                                               겨울은 너무 길다. 이젠 기다리
       정치란 유권자의 위임을 받은 지도자가 사회 각 부문의 현안을 조정하고 공익을 위하여 내일을 설계                                                   는 것도 지겹다.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는 그에 걸 맞는 자질을 갖추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
     데 A시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쏠림현상이 한 세대 가까이 계속되고, 그것의 종말이 언제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동네 주민의 머슴역할을 해야 할 기초의원조차도 정당의 공
     천을 받아야하는 꼴로 말미암아 지역의 거의 모든 정치인은 지역 유권자의 속내를 헤아리기보다는 공
     천권을 쥔 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마름 역할을 기꺼이 자임하고 있다. 또 서울에 계시는 공천권을 쥔
     분은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의 내일을 내다볼 역량을 지닌 큰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정치 신
     인을 오히려 배척하고 다만 자신의 수족의 역할에 그칠 자들을 지역민의 리더로 간택하는 횡포를 부리




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칼럼 _A시 이야기   5
이 아니라 법이 법으로 기능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 초점1 ]
                                                                                   그래서 이 명제에 의하면 시민이기 때문에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법의 권력에 복종하기 때문에 시민으로 포섭될 뿐이라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이를 잘 보여준다. 테베의 왕 크레온이
                                                                                  내리는 지엄한 명령을 거부하며 신의 법, 민중의 법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안티고
                         민주적 사법의 구축을 위한 작은 제안                                     네는, 법에 무지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법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 자격을 박탈당한다. 법이 굳이 무시하
                                                                                  고 모른 채 하고자 하는 또 다른 법의 존재를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면
                                                                                  책되지 아니”하는 무가치 행위인 것이다.
                          글 _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만 필자는 안티고네의 복권을 기대한다. 법에 대한 무지와 법 자신의 무지
                                                                                  가 서로 동일한 것으로 양면이 되면서 획일적 법권력으로 전횡되는 현실이 아니
             법이 무지의
                                                                                  라, 양자의 중간에 서서 언제나 새로운 법을 창조해 나가는 법체계의 존재를 구
      대상(object)이 아니라                                                                                                                “법 그 자체에
                                                                                  상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유효한 법적 시민으로 포섭될 수 있는 민주적 법치의
    무지한 주체(subject)라고     1. 법의 무지                                                가능성을 사법의 영역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법은 일반·추상적 법규가         작동하는 무지가
                                                                                  아니라 개별·구체적 법규를 추구한다. 그러기에 법의 욕망과 법에 대한 욕망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존재”한다면
                          “법의 무지는 면책되지 아니한다(ignorantia juris non excusat)”라는 말은   이 상호 중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법언이다. 법을 위반해 놓고도 법을 잘 몰랐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하                                                                   세상을 바라보는
                                                                                  사법의 몫은 상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법은 법의 운용에 있어 최
     ‘법이 모르는 것’이라면       려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법의 명령                 전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법치의 형성을 위한 우선적인 단초를 구축할          우리의 눈은 어떻게
                         은 알고 있어야 하며 적어도 법적으로 가치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 글에서는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복속을 강요하는 법의 과잉
      면책되어야 하는 것은                                                                                                                    바뀌어야 하는가?
                         줄 알아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이기도 하다.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들의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정당한 법(M. L. 킹)을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A. 존스는 그의 책 『법은 아무 것도 모른다』에서 이 “법의 무지”             찾아낼 수 있는 사법체계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의 의미를 뒤바꾸어 놓는다. 법이 무지의 대상(object)이 아니라 무지한 주체
                         (subject)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법이 모르는
                         것’이라면 면책되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법 그 자체에 작동하는 무
                         지가 존재”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A.
                         존스는 라캉의 이론을 빌어 “법의 주체는 욕망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법의 무지는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한 유일한 핑계라고
                         한다. 법 또는 그를 운용하는 권력은 피지배자의 욕망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
                         은 채 무차별적으로 그들을 규율한다(법의 일반성·추상성의 요청). 입법자의
                         의지와는 다른 욕망을 가진 자 혹은 법집행자의 욕망을 전복하고자 하는 자
                         는 여지없이 법의 추달을 받게 된다. 법은 그들의 다름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굳이 모르는 체 한다. 법이 알지 못 하는 것은 법의 허점




6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7
2. 사법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반적 규범의 객관적 적용”(H. Heller)이라는 정해진 유일한 길만을 가게끔 운명
                                                                                            지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평등조항이 ‘법률의 평등’을 의미하게 된다면 정치적
                          2.1. 민주적 사법                                                       투쟁은 법원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기성의 법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
                                                                                            해관계와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법관의 역할은 법을 발견하고 그 법목적을 현실에 집행하는데 그치지 않는
                         다. 법적용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유기적이며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그 사회                          사법의 독립이 법률형식주의적 도그마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입헌주의적 정
                         조차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로 구성된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 개별적으로 행                           치원리로 정립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법치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법의
                         동하는 구성인자들이 존재한다. 법은 그 속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을 통                            지배(rule of law)가 법관의 지배(rule of the judge)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제하고 분쟁을 예측가능성(Berechenbarkeit)과 계획가능성(Planmaßigkeit)               여기서는 헌법이 초입법적 규범으로 인식되면서 법관(혹은 재판관)이 의회제정
                         의 틀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독재의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                         법을 비롯한 제반의 법률들에 대한 위헌심사를 담당한다. 궁극적인 가치는 입헌
                         전 이후 “민주정치의 헌법화(constitutionalization of democratic politics: A.   주의의 원칙에 따라 헌법에서 규정되거나 혹은 윤곽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간
                         Barak)는 이미 시대적 에토스를 넘어 전 인류의 보편규범으로 고정되고 있기                        주하고 그 구체적인 가치의 획정이나 배분에 대하여는 입법부의 제1차적 헌법해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질서와 법적 안정성으로 상징되는 ‘법의 욕망’과 개별                         석에 우월한 권한을 법원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의 종국
                                                                                                                                                           자연이라든가
                         성과 일탈성으로 특징지워지는 ‘법에 대한 욕망’ 사이의 조화적 통합을 이루                          적 해석자는 입법부도 대통령도 아닌 법원이 된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어내는 것이 오늘날의 사법과 법관에 주어지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환언하자면 현대사회에서의 사법은 입헌주의적의 통제하에 정치적 투쟁의 장                       사회와 같은
                         에서 민주적 법치의 요청이 도출된다.                                               (arena)을 법원으로 끌어들인 채 이루어진다. 법률의 단순한 집행을 넘어 그 법률
    사람들은 점차 이 법률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치주의의 기본은 “인간은 인간이 아닌 법률에만 복종하여야 할 때 비로                           자체 혹은 법률의 적용결과에 대한 헌법적 판단까지도 사법의 대상으로 편입되
        전제군주의 개인적                                                                                                                                          존재(Sein)로부터
                         소 자유롭다”(H. Heller)라는 명제에 터 잡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며 이는 국회가 입법의 과정을 통하여 이미 걸러낸 바 있는 이해관계들의 대립들
           의지가 아니라       사람들은 점차 이 법률이 전제군주의 개인적 의지가 아니라 자연이라든가 사                           을 새로이 구성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법형성의 과정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실                     나와야 한다고 믿게
                         회와 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존재(Sein)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믿게 되었                         제 최근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공익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
                                                                                                                                                           되었다
                         다. 법의 영역에 정치라든가 사회학과 같은 고려가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 지                         사례에 불과하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혹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점에서이다. 다양하고도 다원적인 개별(집단)의지들이 법의 실체를 규정할                            인식과 역할기대의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나면서 기존의 형식주의적 법률적용으
                         정도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지위로까지 고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많은                           로 해결될 수 있는 사건들까지 새로운 법률해석을 요구하거나 보다 엄격한 규범
                         분쟁과 정쟁과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통제를 거칠 것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가 오로지 입법이라는 한정된 장(arena)만을 이용하게                          이러한 변화는 법원의 운영에 두 개의 요청을 수반하게 된다. 첫째는 헌법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프로이센 헌법에서의 평등조항이                            법률에 대한 보다 적정한 해석원리(proper interpretive doctrine)를 형성하여야
                         ‘법률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다가 바이마르공화국에 들                            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법관의 지배가 법관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헌법적
                         어서면서 그것이 ‘법률의 평등’ 내지는 ‘입법자의 자의금지’로 규정되기 시작                         가치에 의하여 통제되는 범위 내에서의 법관의 재량에 의한 지배 즉, 법관의 헌
                         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로이센 헌법의 경우 정치의 장은 입법과정에서                          법합치적인 양심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면 이 법관의 재량을 통제할 수 있는 나
                         만 형성된다. 법률이 만들어질 때 자신의 이해관계가 법률내용으로 포섭되어                           름의 객관적 척도들이 제대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사법의 민주화에 대한
                         야지 일단 법률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법률은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요청이다. 이는 사법과정이 국민에 대하여 열려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적극
                         모든 사람의 생활목적의 배려와 개개인의 지위·신분 등에 상관하지 않는 일                           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을 요구한다. 또




8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9
한 법관의 법판단과 그 전제가 되는 법의 해석원리의 형성 또한 시민사회의                                제의 식민사법, 해방이후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체제하에서의 정치사법이라는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하여 이루어지고 또 수정·변화하도록 함을 의미한다.                                 오명을 딛고 1987년 민주화 이래 우리 사법은 나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입법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과정에서 형성하게 되는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법감정                                  부나 행정부에 비해 입헌주의의 이념에 가장 잘 부합하는 국가기관으로 자리매
                          과 법의식을 법원의 사법과정 속에 유효하게 편입되어 그때그때의 사회적 정                                김하고 있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요청은, 적어도 고전적인 의미에서
                          의로 변환될 수 있는 사법적 의사결정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볼 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우에 약간의 우려스러운 점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크게 우려할 수준은 벗어나 있다. 예산이나 조직의 독립이라든
                           문제는 이러한 요청들은 우리 사법부가 굳건하게 구축해온 사법관료주의                                  가 혹은 대법원장의 지명과정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과 같은 제도
                          와 사법엘리트주의에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적정한 해석원리의 구축                                 적인 교정이 필요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계 전반의 측면에서는 기관
                          필요성은 종래와 같이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법해석의 도그마가 아니라 시민                                 자체의 독립성의 강화를 위한 교정요청은 그리 강하지 않다.(그렇다고 해서 후술
                          들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법공동체 속에서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형성                         하듯 민주적인 사법부체계를 만들기 위한 개선의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되면서 개별적 형평성을 고려함에 적절한 여지를 내포하고 있는 법해석의 독
                          트린를 요청한다. 사법의 민주화는 법관이 더 이상 판단자의 권력을 전유하                                 문제는 법관의 독립이다. 그것은 법관은 신분상으로든 직무상으로든 어떠한
                          지 못 함을 의미한다. 법관은 판단자이기 이전에 분쟁당사자 사이의 의사소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이 이해하는 법에 따라 그리
       과거와 같이 엄격한
                          통을 매개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의 주장을 심판하는 자여야 한다. 나아가 법                                고 오로지 그것에 의해서만 판결하여야 한다는 조직 원리이자 동시에 법관의 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적
      법도그마를 바탕으로          원의 제반 과정들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을 촉진하며 그들의 의사와 비판을                                 천윤리이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이러한 법관의 독
                                                                                                                                                                사법에 대한 요청을
                          자신의 법판단으로 포섭해야 할 열린 법정의 운영자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                                립이 상당 부분 보장된 듯 보이기도 한다. 징계나 탄핵에 의하지 않고서는 신분
     형식주의적인 법적용이
                          만 법원은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는 공간에서부터 점점 무엇을 법으로 구성                                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고등법원부장판사가 되기 전까지는 연공서열에 따                     배척하는 논거로 삼는
       미덕이었던 시절에
                          할 것인가를 심의하는 공간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래와                                라 승진이 일어나며, 대부분의 보임지 발령 자체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배분되는
                                                                                                                                                                것은 그리 적절해
         통용되던 법관의         는 다른 사법체계의 구성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등 그 신분의 보장은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선에도 불
                                                                                                                                                                보이지 않는다.
                                                                                                  구하고 법원의 조직 자체가 엄격한 위계질서에 입각한 관료구조로 되어 있는 만
           독립론으로써
                           2.2. 사법의 독립                                                            큼 여기서 파생되는 제도적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강제
                                                                                                  되고 있는 법관재임용제도나 연공서열과 발탁인사가 혼재되어 있는 법관승진제
                           이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사법의 독립이다. 실제 입헌                               도, 존재 자체에 대한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적 사법불신의 주요원인으로 작
                          주의가 나름의 기반을 구축한 오늘날에 있어 사법의 독립은 별론을 요하지                                 용하는 전관예우의 관행들, 그리고 최근 조금씩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계급사법
                          않을 정도로 입헌적 상식을 이룬다. 그것은 권력분리의 원칙이라든가 법의                                 의 문제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지배, 인권보장 등과 같은 헌법원칙을 실현하고 나아가 재판의 공정이라는
                          자기목적에도 봉사하는, “민주사회에 있어 입헌주의의 생명선(the life blood                          이러한 한계는 법원과 재판의 민주화라는 새로운 요청에 대응될 때에는 더욱
                          of constitutionalism: Beanregand v. Canada [1986] 2 S.C.R. 56,70)에 해당   가중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 법원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의 폐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상과 같은 민주적 법치의 틀에 부                              구조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accessibility)확보, 국민에 대한 사법의 책임
                          합되도록 재구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을 법관의 전속적 권력                               성(responsibility)과 반응성(responsiveness)의 문제, 나아가 쌍방향적 소통을 전
                          으로 포섭하고 있는 종래의 형식주의적·관료주의적인 사법독립론을 민주적                                  제로 국민적 감시에 복종하도록 하는 책무성(accountability)의 구축 등과 같은
                          정치공간으로서의 법원의 독립체계로 변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법통제의 요청에 대한 최대의 장벽이 되고 있다. 법관이 어떠한 영향과
                           주지하듯 사법의 독립이라면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의미한다. 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민적 참여나 민주적 통제로부




10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1
터 자유로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과 같이 사법기능 자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 법원의 계층구조로부터 연유되거나 혹은 그로부터
                          체가 법해석과 법발견으로부터 일종의 법창조의 형태로까지 다양화, 다변화       파생되는 아비투스가 구사하는 내부적 압력과 영향관계이다. 그리고 그동안 관
                          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재판과정에서 법관의 주관적인 정치적 견해나 태도       행 아닌 관행으로 잠복되어 왔던 법관재임용제 또한 얼마전 서기호 판사의 재임
                          가 재판에 유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는      용탈락의 예에서 나타나듯 법원 상층부에 의한 일반 법관의 통제장치로서 유효
                          더욱 절실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엄격한 법도그마를 바탕      하게 작용하고 있다.
                          으로 형식주의적인 법적용이 미덕이었던 시절에 통용되던 법관의 독립론으
                          로써 오늘날과 같은 민주적 사법에 대한 요청을 배척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3.2. 법관연임제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적 법치와 그 실천의 틀인 민주적 사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헌법 제105조 제3항에서 정하고 있는 임기 10년의 법관연임제 혹은 법관재임
                          사법의 독립, 특히 법관의 독립은 두 가지 점에서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 첫   용제는 제헌헌법(제79조)에서부터 도입된 제도이다. 우리 헌법은 일제의 예를
                          째는 법관재임용제를 중심으로 한 법관 인사 제도로부터 파생되는, 법관의       이어 법관을 직업관료체제로 구성하면서도 그에 대한 일종의 통제방식 중의 하
                          (법원) 내부적 독립의 요청이며, 둘째는 법원의 구조적 한계로부터 법관의      나로 법관연임제를 도입하였다. 법관의 신분에 대하여 종신제가 아니라 임기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이다. 절을 바꾸어 하나씩 살펴보기로       를 도입하게 된 것은 법관의 보수화와 관료화를 막기 위함이며, 연임제를 도입한
                          하자.                                           것은 법관의 전문적 숙련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에서이다. 하지만, 이 양자의 주장
                                                                        은 모순된다. 법관의 보수화와 관료화의 현상과 전문적 숙련성의 확보는 대부분
                                                                        의 경우 상보적인 것이며 따라서 어느 하나를 막고 다른 하나를 조장하는 것은

                           3. 법관의 내부적 독립                                현상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3.1. 법관의 독립                                   그 상충되는 제도의 폐해는 최초의 법관임기가 만료되던 1958년에 나타났다.
                                                                        법관의 연임제를 도입해 놓고도 구체적인 연임규정을 만들어놓지 못 했던 상황
                           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착을 구가하는 87년 체제는 적어도 제도적인 측면에      에서 주된 논의는 임기가 만료된 법관이 연임신청을 하였음에도 대통령의 연임
                          서는 법관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수단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현행헌법       결정이 나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변협이나 대법원은 연임
                          은 대법원장의 임명권만 대통령에게 귀속시키고 있을 뿐, 법관의 임명권은       신청이 각하되지 않으면 연임된 것으로 보자는 입장이었고, 정부는 반대로 연임
                          대법원장에게 일임하고 그 또한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며,       통지를 받지 못하면 퇴직하는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당시 헌법은 법관의 임명권
                          법관의 임기나 신분보장조항들을 정비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법관이 사법         을 대통령에게 주었지만, 연임관련규정의 공백부분을 틈타 적어도 법관의 연임
                          부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이의 유      에 관한 것은 대통령의 개입보다는 대법원이 주도하는 방식을 선호하고자 한 것
                          일한 예외가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이다. 실제 탄핵은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      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1958년의 법관연임법은 정부의 입장
                          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헌법재판소법 제48조)에 국회가 일정한     에 서서 제정되었고 이에 기하여 연임제청된 판사의 29%에 달하는 20명의 판사
                          절차를 거쳐 소추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 그 자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들이 연임거부되었다고 한다(문준형,『법원과 검찰의 탄생』 881면). 그리고 이
                                                                                                       ,
                          중대한 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    명단에는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판결을 내린 법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핵소추의 예에서 보듯 국회가 이 탄핵소추권을 남용하였던 전례가 없지 않다       법관연임제의 폐단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93년 대법원은 61명의 임기만료
                          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법관의 독립에 대한 상당한 위해요소로 남아있음      법관들을 연임시키면서 오직 한명의 법관만 연임에서 배제하였다. 그 이유에 대
                          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서는 당사자인 탈락판사는 시사주간지에 사법부의 자정을 촉구한 글을 기고




1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3
한 것에 대한 보복인사였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보복인사가 아니라 당사자                   미로 사용되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임제의 변용은 그대로 우리 헌법
                          가 “시사주간지에 발표한 글에 문제가 있었으며, 돌출행동 등으로 법관으로                   에 반하는 위헌적인 것이다.
                          서의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양측 논의의 당부는 차치                    이번 서기호 판사에 대한 재임용거부사건에서 보듯 현재의 법관연임제는 법
                          하더라도 최소한 “법관으로서의 품위”라고 하는 추상적이고도 애매한 문구                    을 다루는 법률전문가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
                          가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는 이유로 작용하였음은 분명한 일이다.                         기 짝이 없다. 법관에 대한 평정기준 자체도 명확하게 성립되어 있지 않은 터에,
                           연임제가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는 이뿐 아니다.                    왜 어떤 사유에 기하여 연임이 거부되었는지도 특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연임거
                          대표적인 예로는 유신시절인 1973년 양헌 부장판사와 그의 배석판사였던 장                  부결정을 내리는 주체(법관인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며 그 위원은 누구인지,
                          수길·김성기 판사도 연임탈락하였다. 언론(동아일보, 1991. 5. 24. 19면)은            나아가 그 결정과정에 당사자들의 참여와 의견·이의진술의 기회는 어떻게 보장
                          그 이유에 대하여 “71년7월 신민당사 농성 사건으로 구속된 서울대학생들에                  되며 그 반론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거
                          게 무죄를 선고한데 대한 보복”이라는 양헌판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임기                   나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법관연임제는 그 자체 위헌적이라 하지
     법관들로 하여금 자신의         만료가 아니라 헌법개정을 이유로 법관의 재임용을 거부한 경우도 적지 않                    않을 수 없다. 법관들로 하여금 자신의 연임여부를 알 수 있는 그 어떠한 가능성     그렇지 않아도 관료적
                          다. 1961년 군사정권은 헌법개정을 이유로 모든 법관을 재임용하는 방식을                  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법관의 신분을 극도로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
      연임여부를 알 수 있는                                                                                                                    계층구조에 입각한
                          취했고 그 중 47명은 의원면직, 5명의 법관에 대해서는 임용을 거부하였다.                 두면서 그의 직무상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고리를 구성하고 있기
       그 어떠한 가능성도                                                                                                                     우리 사법체계 자체가
                          유신정권기인 1973년에는 9명의 대법관과 38명의 판사를 의원면직하였다.                  때문이다.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또 전두환정권은 1981년 37명의 법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법관의 독립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도 이런 연임제의 난맥을 가중시킨다. 전술한 바와
      따라서 법관의 신분을                                                                                                                     침해하기 십상인데,
                           현행 법원조직법은 법관의 연임배제사유로 ①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같이 오늘날 사법은 정해진 법규범을 기계적 혹은 도그마틱하게 적용하는 수준
      극도로 불안한 상태로                                                                                                                     이 상급자-하급자의
                          인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②근무성적이 현저                   을 넘어선다. 법관의 개인적·주관적 가치판단과 태도로써 당사자들과 더불어 사
        만들어두면서 그의         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③판사로서의                   건을 법적으로 재구성하고 그에 적합한 법적 가치결정을 해나가며 이를 통해 그       관계를 근무평정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등을 열거함(제45조의2 제2항)으                 때그때 새로운 법규범을 창출한다(혹은 그렇게 할 것이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
 직무상의 독립성을 침해할                                                                                                                        더욱 획일적이고
                          로써 남용의 우려를 배제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규정 자체도 “장해”의                서 “근무성적”의 불량 운운 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그것을 판단할 수
      수 있는 중대한 고리를                                                                                                                    일방적인 관계로
                          시간적 정도라든가 “근무성적”, “품위”와 같은 주요 요건들의 의미가 명확치                 있는 어떠한 잣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판사로서의 품위”라는 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않음으로 인해 인사권자에게 상당한 재량여지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                    념은 그 자체 명확성을 상실한 것으로 자의적인 해석과 집행이 예정되어 있다.       하락시키고 있다.
                          제를 안고 있다.                                                   특히 법관연임제의 기초를 이루는 법관근무평정체제는 더더욱 문제적이다.
                           실제 외국의 경우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법관임기제와 그에 의                   이 근무평정제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직무수행, 직무적성,
                          거한 연임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건강 등과 같은 사항과 분석력, 판단력, 자제력, 정의감과 같은 세부항목들이 상
                          악용된 경우는 거의 보고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프랑스의‘부동(不動)의 원                  중 하로 평가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오리
                          칙’(principle de l'inamovibilit)과 같은 예에서 보듯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무중이다. 또한 그 평가주체는 법원장으로 되어 있고 배석판사의 경우에는 소속
                          신분이 보장되는 문자 그대로 임기의 연장인 연임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보는                   부장판사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평가내용이나 척도,
                          것이 더 적확한 해석일 것이다.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평가방식도 상급자에 의한 일방적·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일상적인 용어법에서는 법관연임제라는 말보다는                      획일적, 일방향적 평가에 그치고 있어 그 효율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평가받는 자
                          법관재임용제가 더욱 자주 쓰인다. 임기의 연장이라는 의미에서 연임이 아니                   가 평가자인 상관에 그대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라, 임기만료에 따른 새로운 임용의 재량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재임용의 의                    이렇게 법관의 직무에 대한 통제를 다른 법관 특히 “상급자”인 법관의 일방적




1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5
평가에 일임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요청을 정면에서 침해하는 것               는 법관계층제에 있다. 과거에는 법관의 직급을 단계구조로 만듦으로써 그리고
                          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관료적 계층구조에 입각한 우리 사법체계 자체가 법             현재에는 직급의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직급구조를 그대로 직위체제로
                          관의 독립을 침해하기 십상인데, 이 상급자 - 하급자의 관계를 근무평정으로             변환하여 존치시킴으로써 우리 법원은 독립된 법관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
                          더욱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로 하락시키고 있다. 상급자에 의한 하급자의              의 의사가 일사분란하게 전체 법관의 행동과 의지를 결정하는 단일체로 만든다.
                          통제가 실질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가능하게끔 법원을 구조화하는 것이다(더               그리고 법관연임제는 법관근무평정제와 결합하면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구성
                          구나 평정의 대상은 평판사일 따름이라는 점에서 차별의 문제도 발생한다).              되는 이러한 법관단일체의 원칙을 강화한다. 하위의 법관이 상위의 법관(주로 법
                           헌법은 단순히 “연임”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있을 뿐, 어떤 요건과 어떤             원장 및 소속 부장판사)에 종속되도록 강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 것이다.
                          절차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실제 우리나라의 법원에서 법관은 결코 동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다른 법관과
                          의 상태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침묵이 대법원규칙을 제정하는 입법자의              수평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십수개의 단위로 누적되어 있는 계층구
                          자유로운 형성의 여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이 우리 헌법에              조 속에서 일정한 단계를 차지하면서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수직적 관계를 맺고
                          서 가장 중요한 지향 중의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있는 하나의 구성인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법관은 지방법원합의부 배석판사에
                          위해서는 법관은 내부적인 통제로부터도 원칙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                서 출발하여, 지방법원단독판사, 고등법원배석판사, 대법원재판연구관, 지방법
                          에서 이 “연임”의 규정은 가능한 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원부장판사, 고등법원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 등에
                          특별한 '비행이 없는 한'(during good behavior) 연임되는 것으로 한다는 개   이르는 수많은 계층단계 속에서 그 승진의 상승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으로
                          념이 적절한 것이다. 환언하자면 상시적인 근무평정을 폐지하고 법관이 더               자신의 능력과 법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정하게 된다(여기에 사법연수원 기수
                          이상 법관의 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한 비행이 일어나는 때에 그              에 의한 위계와 경판·향판과 같은 근무지에 의한 서열화 등이 가중된다). 이 각각
                          의 임기만료와 함께 그를 법관직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해              의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그 평가의 결과로써 한
                          보인다는 것이다.                                             단계 한 단계 올라가다가 고등법원부장판사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발탁인사라고
                           헌법개정의 기회가 있다면 법관임기제를 폐기하고 법관종신제를 취하는                 하는 ‘선택받음’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보기 나름으로는 우리나라 법관의 일대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경우 법관에 대한 통제는 금고이상의 형벌이나 징             기가 전부 이 고등법원부장판사로의 발탁이라는 하나의 단위에 매달려 있는 것
                          계, 그리고 대의제적 민주성이 담보되고 있는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 및 헌법             같은 구조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재판소의 탄핵결정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하자있는 법관
                          에 의한 재판으로부터 당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심제도의 확충과 더                문제는 이런 구조 속에서 법관의 독립은 현저하게 깨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불어 재판소원제도가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199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법관을 상대로 실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법원 내부의 상급자로부터 재판에 대한 청탁이나 압력을
                           3.3. 법관계층제                                           받은 적이 있느냐 는 문항에 대해 “전혀 없다”는 21.5%(N=105)에 불과하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보통” 이상)을 한 법관은 22.3%(n=109)에 이른다. 대법원
                           법관연임제가 법관에 대한 압박이나 간섭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장을 정점으로 구성되는 법원 내부의 계층구조가 나름의 영향력행사구조로 중
                          그것이 법관임명권자에 의해 남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관임명              첩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조사결과인 것이다. 일전에 한 부장판사가 이런 식
                          권이 대통령에게 있을 때 그 남용의 양상이 너무도 쉽게 나타났었다는 사실              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법관인사제도에 대하여 “사법부 독립과 민주화를 가로막
                          은 우리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법관임용권이 대법원              는 위헌적 제도”라고 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고(헌재 1993.12.23, 92헌
                          장에 있는 바, 이 경우에도 재임용제는 사법과 법관의 독립에 반하는 것이 되            마247 각하), 다른 소장판사는 이 법관서열제도를 골품제도나 카스트에 비유하
                          는가? 그 답은 일제하에서의 식민사법이 구축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              면서 “고위법관 출신 인사들이 등산길에서도 서열순으로 걷는다는 말이 있을 정




16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7
도”라는 등의 비난을 퍼붓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포괄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대하고도 조
                           이 때문에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에서 법조일          직화된 법관인사행정체계는 그 자체가 법관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위계
                          원화를 전제로 한, 법관의 서열구조 및 직급제 자체의 폐지를 향한 주장이 끊      질서에 의한 상명하복식의 업무구조를 구성해낼 개연성을 항시적으로 안고 있
                          이지 않게 되었다. 즉, 법관을 대법원장, 대법관 및 판사의 3단계로만 구획하     다. 대법원장이 법원계층조직의 정점에 자리 잡고 모든 법관들을 효과적으로 통
                          고 있는 우리 법원조직법(제5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대법원장, 대법관을 제      제, 규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와 여건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이 법원행정처
                          외한 모든 법관은 동일직급, 동일직위로 하되 소속만 지방법원, 고등법원 단       이기 때문이다.
                          위로 구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각급 법원에 존재하는 부       요컨대 법원행정처는 우리 사법권력을 입헌주의적 통제의 범위를 넘어 이상
                          장판사제도를 없애고 동등한 지위의 법관으로 합의부를 구성함으로써 실질          비대화하게끔 만드는 주범의 역할을 할 위험을 안고 있다. 모든 법원과 모든 법
                          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법관의 독립 뿐 아니라 합의제의 기본정        관에 관한 정보와 업무와 처분권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맥락에
                          신에도 충실한 개선방안이 된다. 물론 각 합의부의 재판장은 사건 단위로 그       서 보더라도 법관의 인사와 관련한 문제를 이 중앙기구에서 집중관리할 이유는
         법관을 대법원장,
                          부에 속한 판사들 사이에서 순환방식이나 고참순으로 정하면 충분하며, 이때        없어 보인다. 기존의 법관인사위원회를 보다 실질화하여 문민통제하에 법관인
         대법관 및 판사의
                          재판장은 당해 사건의 재판을 주재하는(presiding) 기능만을 수행하게 될 것   사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법의 지방분권화
                                                                                                                                한마디로 법관의
       3단계로만 구획하고         이다.                                             가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고등법원 정도에 설치되는 법관인사기구에 일임하
                                                                                                                                인사행정이 지나치게
                           아울러 지법원장이나 고법원장과 같은 보직은 당연히 필요하다. 이 또한         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이 법원행정처의 법관인사관리체계에 ‘평판사’
      있는 우리 법원조직법
                          일정한 임기를 정하여 당해 심급의 판사 중에서 선임하되 임기종료 후에는         와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중앙집권화 되어
     (제5조제1항)의 규정에
                          즉시 예전의 직위로 복귀하도록 하면 된다.                         바탕으로 ‘승진’이나 ‘재임용’을 미끼로 상급자 혹은 중앙이 모든 법관을 통제하
                                                                                                                                있을 뿐 아니라
     따라 대법원장, 대법관을                                                        는 구조 자체를 혁파하도록 하여야 한다.
                                                                                                                                관료화되어 계층제의
       제외한 모든 법관은          3.4. 법관인사와 법원행정처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동일직급, 동일직위로
                           법관의 독립이라고 할 때 그 상대개념에는 법원행정도 존재한다. 실제 공         4. 민주적 사법을 위하여                                       포괄통제하고 있는
      하되 소속만 지방법원,        식적인 차원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은 법원행정체
                                                                                                                                것이다.
                          계로부터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근무평정이나 그 결과에 기반한 법관인사위           법전 속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을 발견해야 하며....법의 형식 밑에
 고등법원 단위로 구획하는
                          원회의 운영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 법원행정체계의 한 부분인 셈이다.            서 전쟁의 고함 소리를 찾아야 하며, 사법의 형평성 밑에서 힘의 비대
          것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나라에서의 법원행정은 과도하게 발달하여 어떻게 보면 세계적             칭성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장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           				                -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 아닐 정도이다. 즉, 법관의 임용이나 보직발령과 같이 그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권한은 모두 대법원장에 집중되어 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법의 운용은 필연적으로 억압을 내포한 권력 작용일 수밖에 없다. 입법은 공개
                          그 장을 맡는 법원행정처라는 거대한 방계조직을 활용, 이들에 관한 인사자        와 토론이라는 의회주의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정치대립 속에서 다수결
                          료나 업무자료 등을 수집,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 원칙에 의한 역학관계의 결과로 나타난다. 법이 취하는 일반·추상성은 개별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술하였던 법관근무평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집적하         자가 가지는 특수한 맥락성을 간과하기 일쑤다. 사법의 형평성 또한 어느 일방의
                          며 분석·평가하는 기구도 이 법원행정처이며 그에 기하여 법관의 승진, 전보       희생 위에 구축되는 인위적 균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은
                          등에 관한 총체적인 기안을 내는 곳도 이 법원행정처이다. 한마디로 법관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외친다.
                          인사행정이 지나치게 중앙집권화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관료화되어 계층제의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수많은 삶이 있고 수많은 역사가 있다.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9
그것은 그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며 나름의 가치를 구가한다. 법의      리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법관이 사회와 소통하고 시민의 눈높이에서
                          무지가 결코 따라잡지 못 하는 공간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법률관료에 의하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법의 무지로 인해 사법의 영역에서 결여된 공간을 회복
                          여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법, 법률형식주의에 따라 획일적으로 조성되는 규율      하는 행위이다. 법원 내부의 상급자가 규정하는 법과 도그마가 아니라 시민사회
                          - 그들은 사회보호라는 명분으로 ‘법의 욕망’을 내뱉으며 인간의 위에서 군     의 욕망과 지향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사건을 포섭함으로써 새로운 법적 상태를
                          림하고자 한다. 분명 사법은 권력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의 집적체인 헌법    만들어내는 것은 사법이 87년 체제의 형식주의를 벗어나 한 단계 고양된 수준으
                          은 이 많은 이야기와 삶과 역사의 복권을 요구한다. 인권을 말하며 민주주의     로 발전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특정한 정권의 이해가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와
                          를 요청한다. 모든 권력에 대하여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력일    그들의 법감정·정의감정에 귀 기울임으로써 국민의 사법, 민주적 사법을 구성하
                          것을 요구한다.                                      는 귀한 발 디딤을 해 나가는 것이다. 과거 법조엘리트가 독점하고 전유하던 법
                           최근 벌어진 서기호 판사의 연임거부사건은 우리 시대의 사법이 가져야 하      의 세계를 이제는 시민사회의 공유물로 분점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법공동체
                          는 역할과 위상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법원수뇌      를 구성해 나가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인 것이다.
                          부의 부적절한 언사로부터 양승태 대법원장 이래 법원의 독립에 대한 국민적       문민정부 이래 줄기차게 제기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가 일면에서는 검찰의
                          우려가 짙어가는 판국에 벌어진 이 연임거부처분은 영화「부러진 화살」에        권력남용을 통제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다른 면에서는 법원의 구조에 착안하
                          서 드러난 국민적 사법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법원 측은 연임부적격      여 법관연임제 철폐를 비롯한 제반의 법관인사체계의 혁파를 지향하고 있음은
                                                                                                                          법관이 사회와 소통하고
                          사유로 ‘근무성적 불량’을 들고 있으나, 그 판단의 기준과 근거를 제대로 밝    이 점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법관의 신분을 강화하고 이에 기반한
 최근 벌어진 서기호 판사의
                          히지 않음으로써 “사회적으로 ‘튀는’ 판사들을 제어하고 법원을 단속하기 위     법관의 독립을 충실하게 만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성되는 개개        시민의 눈높이에서
연임거부사건은 우리 시대의
                          해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의혹만 증폭시킬 뿐”(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이라       법관의 자유-독립보장에 의한 자유공간의 형성-는 과거와는 달리 시민사회와의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법이 가져야 하는 역할과           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통으로 귀결되어 사법의 민주화 혹은 민주적 사법을 위한 소중한 디딤돌이 될
                                                                                                                          법의 무지로 인해 사법의
                                                                        것이라는 점이다. 연임거부파동은 이 점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
 위상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87년 체제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적인 권력행태는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                                                         영역에서 결여된 공간을
             제기한다.
                          져가고 있다. 그 정치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들어오는 것은 경제권력과 관료
                                                                                                                          회복하는 행위이다.
                          권력이다. 민주화의 성과를 시민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국가로서의
                          관료가 누리는 것이 실상이다. 법원은 이런 경향의 한 칸을 차지한다. 종래 권
                          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위력에 종속되어 있다가 민주화의 틈을 타고 또 다른
                          국가권력의 지위를 구가하고자 한다. 법관연임제가 군사정권에서와는 전혀
                          다른 구조에서 해악을 발산하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그것은 대법원
                          장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한 법원구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정치권력과 그
                          힘을 분점하는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다. 민주화의 과정을 몸으로 경험
                          한 세대들이 법원의 하부구조를 차지하게 되는 최근의 상황에서 그들의 ‘일
                          탈’을 예방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다단계식 법원계층제
                          와 막강한 법원행정처를 활용한 법관인사권이다. 서기호판사에 대한 연임거
                          부처분은 한 본보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침해되는 법관의 독립은 종국에는 우리 사법체계를 시민사회와 유




20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21
를 폐지하는 것도 논의,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초점2 ]                                        그러나 단지 이 조항만을 이유로 헌법 개정 논의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
                                                                         므로, 당장에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 논의
                                                                         에 국한하기로 합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법원조직법상의 ‘연임 부적격’ 사유에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관한 위헌성 여부만 논하기로 합니다.


                                                                          가. 헌법이 정한 법관의 신분보장 규정과
                                                                            연임제도의 충돌

                                                                          헌법은 법관에 대하여,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헌법은 법관에
                                                                         파면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관의 신분보장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위한
                                                                                                                               대하여, 탄핵 또는
                            글 _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것으로서 법관의 파면과 강제퇴직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고 이상의 형의
                                                                          그런데 한편으로 일반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하여 법률로 연임할 수 있도록
                                                                                                                               선고에 의하지
           우리 헌법상의                                                       하고 있습니다.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법관연임제도는 제헌헌법                                                             그런데 법원조직법 제45조의 2 제2항 제2호에서 정한 연임발령을 하지 아니
                                                                                                                               않도록 하고
        시절부터 있었는데,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할 수 있는 사유로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
                                                                                                                               있습니다. 법관의
     헌법 교과서 등에서는 그                                                       할 수 없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2005. 3.
                                                                                                                               신분보장은 법관의
     이유를 ‘법관의 보수화나          저의 이번 연임 탈락 사태는 법관연임제도의 도입 배경과 존치 필요성에       24.에서야 신설된 것입니다. 당시의 개정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재판상 독립을 위한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관하여 근본적으로 의문과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저 역시 헌법에        ‘판사의 연임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규정이 미비되어 이를 신설하려는 것임. 판
                                                                                                                               것으로서 법관의
       라고 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의문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사의 연임제도가 객관적으로 운영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됨’(법제처 홈페이
                                                                                                                               파면과 강제퇴직을
                            그런데 그 연임제도가 합리적인 것이라면 왜 1997년까지 3명의 법관밖에     지, 재개정문).
                                                                                                                               제한하고 있는
                           탈락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번까지 15년간 아무런 탈락자도 없었는지, 이      또한 2007. 5 1. 개정된 법원조직법 제44조의2는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
                                                                                                                               것입니다.
                           번에는 왜 굳이 sns에 가카빅엿 글을 올리고,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주도적   무성적을 평정하여 그 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시킬 수 있다’고 하였는데, 2011.
                           으로 나섰던 저에 관하여, 실제로는 그러한 사유와 무관하게 오로지 ‘근무성     7. 18. 개정된 법원조직법 제44조의 2 제3항에서는 인사관리뿐 아니라, 아예 연
                           적’만을 이유로 연임 탈락 결정을 했는지 설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심사에 반영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헌법상의 법관연임제도는 제헌헌법 시절부터 있었는데, 헌법 교과서        결국 위 두 가지 입법 연혁을 살펴보면, 헌법에 연임제도가 규정되어 있기는
                           등에서는 그 이유를 ‘법관의 보수화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라고 하고 있습    하나, 2005년에서야 법원조직법에 연임 부적격 사유가 제시되었고, 그나마 ‘근
                           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현행 연임제도는, 그 본래 취지에 반하여 정치    무성적 현저히 불량’ 관련 연임사유에 근무평정자료를 반영하도록 한 것도 최근
                           적으로 예속된 대법원장에 의하여 악용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에서야 개정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재임용 탈락한 판사들은 보수적이거나 관료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는 헌법상 연임제도가 입법 미비로 인해 사문화된 것이었음에도, 언제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 개혁을 주장하고 정권의 표현의 자유 억압을 비판했던      정치권과 대법원장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적용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에 예속된 대법원장이 사실상 법관의 파면 규정을
                            그렇다면, 향후 헌법 개정 논의가 시작될 경우 아예 헌법 자체의 연임제도     회피하여 법원 개혁을 주장하는 평판사들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




2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2 _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23
던 것입니다.                                       3) 지난 10년간 근무평정의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이 담보된 적이 없는데,
                            헌법이 정한 법관의 신분보장은 형식적인 신분보장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를 근거로 연임 부적격 심사를 한다는 것은 위헌적이고 부당합니다.
                           신분보장까지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헌법상 연임제도 부분은 신      왜냐하면 근무평정은 객관적 통계자료만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성,
                           분보장 규정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균형감, 책임감 등 주관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지표가 포함되고, 그것도 법
                           만 그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원장이 단독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법원장에 대한 다면평가를 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없는 이상, 과연 그 법원장이 공정하게 평정했는지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나. ‘근무성적 현저히 불량’규정의 위헌성                      또한 근무성적평정규칙상, 근무평정은 비공개이기 때문에, 1년 단위로 혹은
                                                                        최소한 2~3년 단위로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명할 기회도 없습니다.
                            1) 근무평정을 연임심사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              이렇게 되면 자신의 근무평정이 어떻게 매겨지는지도 모르는 채 10년 동안 지
                            개정된 법원조직법에서는 근무평정의 기준으로 ‘사건처리율과 처리기간,       내오다가, 필자의 경우처럼 연임발령 3주 정도를 남겨둔 시점에서 갑자기 ‘근무
                           상소율, 파기율 및 파기사유 등이, 자질 평정인 경우에는 성실성, 청렴성 및   성적 현저히 불량’이라며 통보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방어권을 충실히 행사
                           친절성 등이 각각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처리율과 상     하고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소율 등은 재판의 독립성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이미 일반 기업의 정규직 사원조차도 근무평정이 통보되고 이의제기 절차가
                                                                                                                             심사대상자인 판사
                           가지고 근무평정을 하는 것도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나아가 연    보장되며, 평가자가 과연 공정하게 평가했는지를 묻는 상향식 평가도 이루어지
     헌법상 연임제도 부분은                                                                                                            모두가 잠재적 연임
                           임심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고 있는 마당에,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원이 이렇게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서
     신분보장 규정의 본질적                                                                                                            탈락자의 위험에
                            또한 성실성, 청렴성, 친절성 등은 주관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으   연임심사를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내용을 침해하지 않도록,                                                                                                           처해지므로, 파면의
                           로서, 이러한 사유들을 가지고 연임심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의적 판단
          그리고 명확하게                                                                                                           사유를 한정하고 있는
                           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4) 상대평가의 위험성 - 연임심사 기준의 구체화
     규정되어야만 그 충돌을                                                                                                            헌법상 신분보장
                                                                         설령 근무평정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상대평가는 해당 법원의 누군가가 ‘하
         피할 수 있습니다.                                                                                                          규정이 사실상
                            2) 근무태만인 판사에 대하여는 징계절차로 충분                  ‘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해당 법원의 비교대상인 단독판사 모두가 평
                                                                                                                             무력화됩니다.
                            판사의 연임심사 기준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도제식      균치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러한 ’하‘ 평가를 여러 차례
                           판사 양성 시스템인 현재의 경력법관제도하에서 법원 재판에 대한 불신과 불     받아 전체 심사 대상자의 하위 2%라는 이유만으로 연임 탈락 사유로 삼는다면,
                           만이 누적되다 보니 불성실, 근무태만인 판사를 걸러내야 한다는 요청에 의     필연적으로 해마다 누군가는 연임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해서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심사대상자인 판사 모두가 잠재적 연임 탈락자의 위험에 처해지므
                            그런데 일반 정규직 사원의 경우도 불성실, 근무태만이라고 하여 곧바로      로, 파면의 사유를 한정하고 있는 헌법상 신분보장 규정이 사실상 무력화됩니다.
                           해고하지는 않습니다. 징계사유일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판사에 대하여       따라서 이를 막으려면, 최소한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매년 근
                           유독 징계가 아닌 연임 탈락이라는 잣대를 대는 것은, 헌법상 신분보장 규정    무평정을 ‘해당 법원의 같은 업무 담당하는 판사들
                           과 맞지 않고,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계약기간 만료를 원인으로 계약     의 사건처리율, 항소율 등 평균치보다 50% 이상
                           연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떨어질 경우에만 경고를 주고, 이러한 경고가 3회
                            명예를 중시하는 판사에게 근무태만과 불성실을 이유로 한 징계처분은 매      이상 경우 연임 탈락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법
                           우 치욕스러운 것이어서, 이를 견디기 힘든 판사가 스스로 사직하는 것은 별    에 규정하여야 합니다(50%나 3회 이상은, 모두 예
                           개의 문제입니다.                                    를 든 수치이고, 사회적 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2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2 _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25
민변2012.3.4월호
민변2012.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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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2012.3.4월호

  • 1. 2012 3·4 vol. 99 칼 럼“ A 시 이 야 기 ” 초점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사법제대로보기 (주)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의 확정! 기획연재‘남북기본합의서’ 법적성격에 관한 비판론적 검토 의 특별기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Snyder v. Phelps (2011) 판결
  • 2. 2012 3 4 VOL99 CONTENTS 칼럼 “A시 이야기” _정재형 2 초점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_한상희 6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_서기호 22 사법 제대로 보기 (주)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의 확정 _김태욱 26 국립대학교 기성회비 반환 판결의 의의와 과제 _하주희 44 법률 바로 세우기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개정에 대한 의견 _김영준 54 시론 한국 사회, 그리고 비극성과 아이러니 _이광택 64 기획연재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관한 비판론적 검토 _이석범 70 특별기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Snyder v. Phelps(2011) 판결 _장주영 78 민변의 활동 『나의 논어』- 홍사중, 이다미디어(2004) _정리 : 좌세준 92 온누리의 평화는 강정으로부터-제주 국제평화대회에 다녀와서 _권정호 107 성명 및 논평 성명 / 논평 112 1 2 3 4 1. 제주서 열린 제주 국제평화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2.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금속노조 2012 투쟁선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3.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학생위원회, 한국대학생연합관계자들이 1월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표지의 제자는 한승헌 변호사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열고 기성회비 규탄 및 반값등록금을 촉구하고 있다. 삽화는 김규정·안세호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4. 지난 3월 1일 광화문에서 열린 유권자 독립 및 참여선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서기호 전 판사
  • 3. [ 칼럼 ] 최후의 심판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후보자 추천이 사천이 아닌 공천이 되어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이 선 거철이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전에 만난 상담 손님이 날 더러 물었다.‘변호사님은 출마하지 않나요?’‘000당 공천을 받으면 출 “ 시 이야기” 마할게요.’라고 답했다. 사실 이 썰렁한 농담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그 당의 공천 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다는 것으로 동문서답 아니면 우문현답식 인사치례가 오간 것이다. 남한의 어떤 도시(A시라고 하자)는 지금 30대에 이른 사람이 출생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야 당후보도 당선시키지 않은 독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무척 재미가 없는 곳 이다. 투표율도 전국에서 늘 꼴찌 수준이다. 기자들도 지역 선거보도에 있어 공천이 끝나면 더 이상 기 사거리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선거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싱거운 일이다. 어느 정당의 그 후보가 과연 전국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할 수 있을지, 나머지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정도를 득표할 수 있 글 _정재형 회원 을까 하는 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선거철이 되면 각 당은 후보자를 정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봄이 왔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만물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편다.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움이 아니 A시에서는 역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진다. 어떤 정당은 대기 남한의 어떤 도시(A시라고 하자)는 라, 물기를 품은 부드러움이다. 번호표라도 주어야 할 정도로 무척 긴 줄이 생기는데 반해, 다른 지금 30대에 이른 사람이 출생할 때부터 점심을 같이 먹자는 동창의 전화를 받고 상담 손님을 보내고 팔공산으로 차를 몰고 간다. 친구의 직 당은 줄이 아예 없다. 그래서 어떤 정당에서는 공천의 전 과정에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야당후보도 당선시키지 장이 팔공산 자락이라 오랜 만에 혼자서 산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선다. 불과 30분 정도의 시간에 도심 걸쳐 치열한 경쟁과 무수한 잡음이 생기는데 반해 다른 당은 고 않은 독보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에서 전원으로 내가 자리한 공간을 바꾸었다. 파계사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뽑아 팔공산 요하기가 적막강산이다. 공천을 신청하는 후보들이 많으니 그 선거철이 되면 무척 재미가 없는 곳이다. 자락에 머문 봄기운을 만끽한 후 다시 산을 내려온다. 불로동을 지나 아양교를 건너 동대구역을 거쳐 당의 공천 결과 무척 경쟁력 있는 후보가 정해질 것이라고 기대 투표율도 전국에서 늘 꼴찌 수준이다. 사무실이 있는 범어동으로 돌아온다.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대개의 경우 그 기대는 배반된다. 그 신호대기를 위해 멈춘 차안에서 문득 주변의 기운이 범상치 않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갈 때는 정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몰랐는데 가로 곳곳에 출마자의 얼굴 사진과 선거용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렇군, 18대 국 것임을 경험상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공천권을 쥔 자들은 소위 ‘본선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야 회의원 선거의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 오늘이군. 말로 현재 권력의 수족이 될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에 불과하고 또 현재 권력의 비율에 적합한 나눠먹 기가 성행한다. 그러니 유권자에게 내미는 공천 받은 자의 명함은 무척 초라하다. 또 한편 다른 정당은 아시다시피 선거는 피치자가 치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후보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 제발 후보가 되어 달라고 사람들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그 결과 이 당이던 저 당이던 해 그 선택을 유도하는 각양각색의 정치적 모양새를 연출하려고 애쓴다. 그 과정을 고급스럽게 표현하 투표용지에 기재된 후보들은 별 영양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것이 선거 주기에 맞추어 되풀이 면 민심을 읽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밑바닥의 표심이 정당권력을 통해 정책에 반영되고 대의정치라는 된다. 이런 선거가 한 세대를 통해 되풀이 되면서 이제 A시의 지역정치는 척박함을 넘어 부재의 지경 틀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에 이르렀다. 선거철이 되면 정당의 후보추천에 있어서 정당권력을 쥔 자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하수인을 선 거에 내보내려는 개인적인 이익동기가 작용하는 한편,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나아가 정당의 존립을 위 A시의 선거는 ‘어떤 정당으로부터 공천 받은 후보’, ‘어떤 정당의 후보가 되려고 노력했던 후보’, ‘당 해 대중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한 괜찮은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2가지 상반된 압력이 작용한다. 정당 선되면 어떤 정당에 복귀할 후보’들이 일합을 겨루는 판이다. A시의 시민들은 자기 지역의 국회의원, 의 후보의 추천과정에서 개인적 욕심을 배제시키고 공정성을 견인해 내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구청장, 시의원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들이 속한 정당을 알 뿐이다. 오죽하면 어떤 신문은 A시 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칼럼 _A시 이야기 3
  • 4. 의 국회의원은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임명직’ 공무원이라고 비아냥할까. 후보자 추천을 고무줄을 늘 고 있다. 암울하게도 선공후사할 정치인으로서 자질을 충분히 가진 A시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 분이나 이듯, 아이들 땅따먹기 놀이 하듯이 해치울 수 있을까? 오죽하면 ‘토종 TK’, ‘서울 TK’라는, 어떤 당의 그 대리인 앞에 긴 줄을 서는 괴로운 선택을 하거나 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텃밭’이라는 표현이 등장할까? 언제까지 A시 시민들이 참한 젊은이들의 좌절을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또 이런 사정은 선한 정치인 A시의 장래는 우울하다. 사실 정치라는 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A시의 시민들이다. 그들의 기형적 의 진입과 훈련을 포기케 하는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표출 인 선택이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니 알면서도 즐기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제약하고 왜곡한다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권부로 불렸 는 마조히즘의 경지에 까지 이른 것 같다. 각종 경제지표에서 만년 꼴찌를 기록하는 시민들이 대한민 던 A시는 정치가 없고, 정치인이 없다. 암울하게도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A시의 미래 세대는 인격화 국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정서와 공감하고 연대하는 엉뚱한 결과를 반복 시청하다보니 이곳 된 정치권력에만 맛들인 시정잡배에 불과한 사람을 그들의 리더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아 에서 40년도 훨씬 넘게 살아온 나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헷갈리기까지 한다. 이들을 다른 도시로 피난성 유학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고, 곧 젊은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지역 풍토와 좌회전을 금지하는 A시의 정책도 권력을 쥔 그 분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괜한 의 한편 ‘소외’를 이야기하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A시에서 벌어진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정치인 심도 해본다. 들이다. 역설적으로 선거철이 되면 가장 굴욕을 맛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신의 성과와 치적 에 관계없이 자기 윗선의 입맛과 권력의 향배라는 우연한 사정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겨야 하는 지난 주 A시에서 ‘지식인 500인’ 선언이라는 것이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교수, 의료인, 변호 불우한 사람들이다. 그가 아무리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사들이 모여서 성명을 낸 것인데, 요지는 이렇다. 한 당만 찍지 말고 다른 당도 찍어주자는 것이다. 희 하더라도 자신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지역을 위해 불철주야 노 한한 원인에 걸맞은 희한한 대책일 수밖에 없고 이런 유치한 선언에 귀한 이름 석 자를 올려야 하는 참 서울에 계시는 그 분의 ‘속내’가 심초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천과정에서 유효한 득점요소 담한 지경에 이르러 몇 자 적었다. 어떠하고 어떤 ‘애로’가 계실까, 가 되지 못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분들은 자신 그 분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천착할 의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에 관하여 항상 고민해야 하는 외로운 천지자연은 순환하고 만물은 흥망성쇠의 과정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이다. 또 자신이 선 줄이 과연 확실한가, 다음 선거에서도 을 거친다. 그런 자연법칙에 기대어 A시도 즉 자생적인 권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간택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외생변수에 자신의 명운을 걸어야 하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화사한 봄볕 불임 정치인이고 그런 분들이 니, 참으로 답이 안 나오는 팍팍한 삶의 연속일 것이다. 이러다 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마른 가지에 지도하는 도시가 바로 A시이다. 보니 이 분들의 관심사는 지역 유권자의 지지가 아니라, 서울에 잎을 피우고 꽃부리를 밀어 올리 천지자연은 순환하고 만물은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친다. 계시는 그 분의 ‘속내’가 어떠하고 어떤 ‘애로’가 계실까, 그 분 듯이, 때가 되면 변할 것이다. 다 그런 자연법칙에 기대어 A시도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천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자생적인 권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 양한 색깔의 꽃이 만개하는 봄 화사한 봄볕과 부드러운 봄바람이 마른 가지에 잎을 피우고 정치인이고 그런 분들이 지도하는 도시가 바로 A시이다. 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A시의 꽃부리를 밀어 올리듯이, 때가 되면 변할 것이다. 겨울은 너무 길다. 이젠 기다리 정치란 유권자의 위임을 받은 지도자가 사회 각 부문의 현안을 조정하고 공익을 위하여 내일을 설계 는 것도 지겹다.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는 그에 걸 맞는 자질을 갖추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런 데 A시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쏠림현상이 한 세대 가까이 계속되고, 그것의 종말이 언제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동네 주민의 머슴역할을 해야 할 기초의원조차도 정당의 공 천을 받아야하는 꼴로 말미암아 지역의 거의 모든 정치인은 지역 유권자의 속내를 헤아리기보다는 공 천권을 쥔 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마름 역할을 기꺼이 자임하고 있다. 또 서울에 계시는 공천권을 쥔 분은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의 내일을 내다볼 역량을 지닌 큰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정치 신 인을 오히려 배척하고 다만 자신의 수족의 역할에 그칠 자들을 지역민의 리더로 간택하는 횡포를 부리 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칼럼 _A시 이야기 5
  • 5. 이 아니라 법이 법으로 기능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 초점1 ] 그래서 이 명제에 의하면 시민이기 때문에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법의 권력에 복종하기 때문에 시민으로 포섭될 뿐이라 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이를 잘 보여준다. 테베의 왕 크레온이 내리는 지엄한 명령을 거부하며 신의 법, 민중의 법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안티고 민주적 사법의 구축을 위한 작은 제안 네는, 법에 무지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법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 자격을 박탈당한다. 법이 굳이 무시하 고 모른 채 하고자 하는 또 다른 법의 존재를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면 책되지 아니”하는 무가치 행위인 것이다. 글 _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만 필자는 안티고네의 복권을 기대한다. 법에 대한 무지와 법 자신의 무지 가 서로 동일한 것으로 양면이 되면서 획일적 법권력으로 전횡되는 현실이 아니 법이 무지의 라, 양자의 중간에 서서 언제나 새로운 법을 창조해 나가는 법체계의 존재를 구 대상(object)이 아니라 “법 그 자체에 상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유효한 법적 시민으로 포섭될 수 있는 민주적 법치의 무지한 주체(subject)라고 1. 법의 무지 가능성을 사법의 영역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법은 일반·추상적 법규가 작동하는 무지가 아니라 개별·구체적 법규를 추구한다. 그러기에 법의 욕망과 법에 대한 욕망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존재”한다면 “법의 무지는 면책되지 아니한다(ignorantia juris non excusat)”라는 말은 이 상호 중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의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법언이다. 법을 위반해 놓고도 법을 잘 몰랐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하 세상을 바라보는 사법의 몫은 상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법은 법의 운용에 있어 최 ‘법이 모르는 것’이라면 려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법의 명령 전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법치의 형성을 위한 우선적인 단초를 구축할 우리의 눈은 어떻게 은 알고 있어야 하며 적어도 법적으로 가치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이 글에서는 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복속을 강요하는 법의 과잉 면책되어야 하는 것은 바뀌어야 하는가? 줄 알아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이기도 하다.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들의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정당한 법(M. L. 킹)을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A. 존스는 그의 책 『법은 아무 것도 모른다』에서 이 “법의 무지” 찾아낼 수 있는 사법체계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의 의미를 뒤바꾸어 놓는다. 법이 무지의 대상(object)이 아니라 무지한 주체 (subject)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법이 모르는 것’이라면 면책되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법 그 자체에 작동하는 무 지가 존재”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A. 존스는 라캉의 이론을 빌어 “법의 주체는 욕망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법의 무지는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한 유일한 핑계라고 한다. 법 또는 그를 운용하는 권력은 피지배자의 욕망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 은 채 무차별적으로 그들을 규율한다(법의 일반성·추상성의 요청). 입법자의 의지와는 다른 욕망을 가진 자 혹은 법집행자의 욕망을 전복하고자 하는 자 는 여지없이 법의 추달을 받게 된다. 법은 그들의 다름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굳이 모르는 체 한다. 법이 알지 못 하는 것은 법의 허점 6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7
  • 6. 2. 사법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반적 규범의 객관적 적용”(H. Heller)이라는 정해진 유일한 길만을 가게끔 운명 지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평등조항이 ‘법률의 평등’을 의미하게 된다면 정치적 2.1. 민주적 사법 투쟁은 법원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기성의 법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 해관계와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법관의 역할은 법을 발견하고 그 법목적을 현실에 집행하는데 그치지 않는 다. 법적용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유기적이며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그 사회 사법의 독립이 법률형식주의적 도그마의 수준을 넘어 하나의 입헌주의적 정 조차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로 구성된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 개별적으로 행 치원리로 정립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법치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법의 동하는 구성인자들이 존재한다. 법은 그 속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을 통 지배(rule of law)가 법관의 지배(rule of the judge)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제하고 분쟁을 예측가능성(Berechenbarkeit)과 계획가능성(Planmaßigkeit) 여기서는 헌법이 초입법적 규범으로 인식되면서 법관(혹은 재판관)이 의회제정 의 틀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독재의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 법을 비롯한 제반의 법률들에 대한 위헌심사를 담당한다. 궁극적인 가치는 입헌 전 이후 “민주정치의 헌법화(constitutionalization of democratic politics: A. 주의의 원칙에 따라 헌법에서 규정되거나 혹은 윤곽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간 Barak)는 이미 시대적 에토스를 넘어 전 인류의 보편규범으로 고정되고 있기 주하고 그 구체적인 가치의 획정이나 배분에 대하여는 입법부의 제1차적 헌법해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질서와 법적 안정성으로 상징되는 ‘법의 욕망’과 개별 석에 우월한 권한을 법원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의 종국 자연이라든가 성과 일탈성으로 특징지워지는 ‘법에 대한 욕망’ 사이의 조화적 통합을 이루 적 해석자는 입법부도 대통령도 아닌 법원이 된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어내는 것이 오늘날의 사법과 법관에 주어지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환언하자면 현대사회에서의 사법은 입헌주의적의 통제하에 정치적 투쟁의 장 사회와 같은 에서 민주적 법치의 요청이 도출된다. (arena)을 법원으로 끌어들인 채 이루어진다. 법률의 단순한 집행을 넘어 그 법률 사람들은 점차 이 법률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치주의의 기본은 “인간은 인간이 아닌 법률에만 복종하여야 할 때 비로 자체 혹은 법률의 적용결과에 대한 헌법적 판단까지도 사법의 대상으로 편입되 전제군주의 개인적 존재(Sein)로부터 소 자유롭다”(H. Heller)라는 명제에 터 잡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며 이는 국회가 입법의 과정을 통하여 이미 걸러낸 바 있는 이해관계들의 대립들 의지가 아니라 사람들은 점차 이 법률이 전제군주의 개인적 의지가 아니라 자연이라든가 사 을 새로이 구성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법형성의 과정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실 나와야 한다고 믿게 회와 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존재(Sein)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믿게 되었 제 최근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공익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 되었다 다. 법의 영역에 정치라든가 사회학과 같은 고려가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 지 사례에 불과하다.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혹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점에서이다. 다양하고도 다원적인 개별(집단)의지들이 법의 실체를 규정할 인식과 역할기대의 변화가 급속도로 일어나면서 기존의 형식주의적 법률적용으 정도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지위로까지 고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많은 로 해결될 수 있는 사건들까지 새로운 법률해석을 요구하거나 보다 엄격한 규범 분쟁과 정쟁과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통제를 거칠 것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가 오로지 입법이라는 한정된 장(arena)만을 이용하게 이러한 변화는 법원의 운영에 두 개의 요청을 수반하게 된다. 첫째는 헌법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프로이센 헌법에서의 평등조항이 법률에 대한 보다 적정한 해석원리(proper interpretive doctrine)를 형성하여야 ‘법률 앞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다가 바이마르공화국에 들 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법관의 지배가 법관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헌법적 어서면서 그것이 ‘법률의 평등’ 내지는 ‘입법자의 자의금지’로 규정되기 시작 가치에 의하여 통제되는 범위 내에서의 법관의 재량에 의한 지배 즉, 법관의 헌 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프로이센 헌법의 경우 정치의 장은 입법과정에서 법합치적인 양심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면 이 법관의 재량을 통제할 수 있는 나 만 형성된다. 법률이 만들어질 때 자신의 이해관계가 법률내용으로 포섭되어 름의 객관적 척도들이 제대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사법의 민주화에 대한 야지 일단 법률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법률은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요청이다. 이는 사법과정이 국민에 대하여 열려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적극 모든 사람의 생활목적의 배려와 개개인의 지위·신분 등에 상관하지 않는 일 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을 요구한다. 또 8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9
  • 7. 한 법관의 법판단과 그 전제가 되는 법의 해석원리의 형성 또한 시민사회의 제의 식민사법, 해방이후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체제하에서의 정치사법이라는 다양한 가치들을 반영하여 이루어지고 또 수정·변화하도록 함을 의미한다. 오명을 딛고 1987년 민주화 이래 우리 사법은 나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입법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과정에서 형성하게 되는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법감정 부나 행정부에 비해 입헌주의의 이념에 가장 잘 부합하는 국가기관으로 자리매 과 법의식을 법원의 사법과정 속에 유효하게 편입되어 그때그때의 사회적 정 김하고 있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요청은, 적어도 고전적인 의미에서 의로 변환될 수 있는 사법적 의사결정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볼 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우에 약간의 우려스러운 점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크게 우려할 수준은 벗어나 있다. 예산이나 조직의 독립이라든 문제는 이러한 요청들은 우리 사법부가 굳건하게 구축해온 사법관료주의 가 혹은 대법원장의 지명과정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과 같은 제도 와 사법엘리트주의에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적정한 해석원리의 구축 적인 교정이 필요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체계 전반의 측면에서는 기관 필요성은 종래와 같이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법해석의 도그마가 아니라 시민 자체의 독립성의 강화를 위한 교정요청은 그리 강하지 않다.(그렇다고 해서 후술 들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법공동체 속에서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형성 하듯 민주적인 사법부체계를 만들기 위한 개선의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되면서 개별적 형평성을 고려함에 적절한 여지를 내포하고 있는 법해석의 독 트린를 요청한다. 사법의 민주화는 법관이 더 이상 판단자의 권력을 전유하 문제는 법관의 독립이다. 그것은 법관은 신분상으로든 직무상으로든 어떠한 지 못 함을 의미한다. 법관은 판단자이기 이전에 분쟁당사자 사이의 의사소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이 이해하는 법에 따라 그리 과거와 같이 엄격한 통을 매개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의 주장을 심판하는 자여야 한다. 나아가 법 고 오로지 그것에 의해서만 판결하여야 한다는 조직 원리이자 동시에 법관의 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적 법도그마를 바탕으로 원의 제반 과정들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을 촉진하며 그들의 의사와 비판을 천윤리이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이러한 법관의 독 사법에 대한 요청을 자신의 법판단으로 포섭해야 할 열린 법정의 운영자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 립이 상당 부분 보장된 듯 보이기도 한다. 징계나 탄핵에 의하지 않고서는 신분 형식주의적인 법적용이 만 법원은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는 공간에서부터 점점 무엇을 법으로 구성 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고등법원부장판사가 되기 전까지는 연공서열에 따 배척하는 논거로 삼는 미덕이었던 시절에 할 것인가를 심의하는 공간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래와 라 승진이 일어나며, 대부분의 보임지 발령 자체도 본인의 희망에 따라 배분되는 것은 그리 적절해 통용되던 법관의 는 다른 사법체계의 구성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등 그 신분의 보장은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선에도 불 보이지 않는다. 구하고 법원의 조직 자체가 엄격한 위계질서에 입각한 관료구조로 되어 있는 만 독립론으로써 2.2. 사법의 독립 큼 여기서 파생되는 제도적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강제 되고 있는 법관재임용제도나 연공서열과 발탁인사가 혼재되어 있는 법관승진제 이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사법의 독립이다. 실제 입헌 도, 존재 자체에 대한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적 사법불신의 주요원인으로 작 주의가 나름의 기반을 구축한 오늘날에 있어 사법의 독립은 별론을 요하지 용하는 전관예우의 관행들, 그리고 최근 조금씩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계급사법 않을 정도로 입헌적 상식을 이룬다. 그것은 권력분리의 원칙이라든가 법의 의 문제 등은 그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지배, 인권보장 등과 같은 헌법원칙을 실현하고 나아가 재판의 공정이라는 자기목적에도 봉사하는, “민주사회에 있어 입헌주의의 생명선(the life blood 이러한 한계는 법원과 재판의 민주화라는 새로운 요청에 대응될 때에는 더욱 of constitutionalism: Beanregand v. Canada [1986] 2 S.C.R. 56,70)에 해당 가중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 법원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의 폐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상과 같은 민주적 법치의 틀에 부 구조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accessibility)확보, 국민에 대한 사법의 책임 합되도록 재구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을 법관의 전속적 권력 성(responsibility)과 반응성(responsiveness)의 문제, 나아가 쌍방향적 소통을 전 으로 포섭하고 있는 종래의 형식주의적·관료주의적인 사법독립론을 민주적 제로 국민적 감시에 복종하도록 하는 책무성(accountability)의 구축 등과 같은 정치공간으로서의 법원의 독립체계로 변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사법통제의 요청에 대한 최대의 장벽이 되고 있다. 법관이 어떠한 영향과 주지하듯 사법의 독립이라면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의미한다. 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민적 참여나 민주적 통제로부 10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1
  • 8. 터 자유로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과 같이 사법기능 자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 법원의 계층구조로부터 연유되거나 혹은 그로부터 체가 법해석과 법발견으로부터 일종의 법창조의 형태로까지 다양화, 다변화 파생되는 아비투스가 구사하는 내부적 압력과 영향관계이다. 그리고 그동안 관 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재판과정에서 법관의 주관적인 정치적 견해나 태도 행 아닌 관행으로 잠복되어 왔던 법관재임용제 또한 얼마전 서기호 판사의 재임 가 재판에 유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는 용탈락의 예에서 나타나듯 법원 상층부에 의한 일반 법관의 통제장치로서 유효 더욱 절실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엄격한 법도그마를 바탕 하게 작용하고 있다. 으로 형식주의적인 법적용이 미덕이었던 시절에 통용되던 법관의 독립론으 로써 오늘날과 같은 민주적 사법에 대한 요청을 배척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3.2. 법관연임제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적 법치와 그 실천의 틀인 민주적 사법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헌법 제105조 제3항에서 정하고 있는 임기 10년의 법관연임제 혹은 법관재임 사법의 독립, 특히 법관의 독립은 두 가지 점에서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 첫 용제는 제헌헌법(제79조)에서부터 도입된 제도이다. 우리 헌법은 일제의 예를 째는 법관재임용제를 중심으로 한 법관 인사 제도로부터 파생되는, 법관의 이어 법관을 직업관료체제로 구성하면서도 그에 대한 일종의 통제방식 중의 하 (법원) 내부적 독립의 요청이며, 둘째는 법원의 구조적 한계로부터 법관의 나로 법관연임제를 도입하였다. 법관의 신분에 대하여 종신제가 아니라 임기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이다. 절을 바꾸어 하나씩 살펴보기로 를 도입하게 된 것은 법관의 보수화와 관료화를 막기 위함이며, 연임제를 도입한 하자. 것은 법관의 전문적 숙련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에서이다. 하지만, 이 양자의 주장 은 모순된다. 법관의 보수화와 관료화의 현상과 전문적 숙련성의 확보는 대부분 의 경우 상보적인 것이며 따라서 어느 하나를 막고 다른 하나를 조장하는 것은 3. 법관의 내부적 독립 현상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3.1. 법관의 독립 그 상충되는 제도의 폐해는 최초의 법관임기가 만료되던 1958년에 나타났다. 법관의 연임제를 도입해 놓고도 구체적인 연임규정을 만들어놓지 못 했던 상황 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착을 구가하는 87년 체제는 적어도 제도적인 측면에 에서 주된 논의는 임기가 만료된 법관이 연임신청을 하였음에도 대통령의 연임 서는 법관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수단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현행헌법 결정이 나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변협이나 대법원은 연임 은 대법원장의 임명권만 대통령에게 귀속시키고 있을 뿐, 법관의 임명권은 신청이 각하되지 않으면 연임된 것으로 보자는 입장이었고, 정부는 반대로 연임 대법원장에게 일임하고 그 또한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며, 통지를 받지 못하면 퇴직하는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당시 헌법은 법관의 임명권 법관의 임기나 신분보장조항들을 정비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법관이 사법 을 대통령에게 주었지만, 연임관련규정의 공백부분을 틈타 적어도 법관의 연임 부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이의 유 에 관한 것은 대통령의 개입보다는 대법원이 주도하는 방식을 선호하고자 한 것 일한 예외가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이다. 실제 탄핵은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 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1958년의 법관연임법은 정부의 입장 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헌법재판소법 제48조)에 국회가 일정한 에 서서 제정되었고 이에 기하여 연임제청된 판사의 29%에 달하는 20명의 판사 절차를 거쳐 소추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 그 자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들이 연임거부되었다고 한다(문준형,『법원과 검찰의 탄생』 881면). 그리고 이 , 중대한 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 명단에는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판결을 내린 법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핵소추의 예에서 보듯 국회가 이 탄핵소추권을 남용하였던 전례가 없지 않다 법관연임제의 폐단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93년 대법원은 61명의 임기만료 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법관의 독립에 대한 상당한 위해요소로 남아있음 법관들을 연임시키면서 오직 한명의 법관만 연임에서 배제하였다. 그 이유에 대 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서는 당사자인 탈락판사는 시사주간지에 사법부의 자정을 촉구한 글을 기고 1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3
  • 9. 한 것에 대한 보복인사였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은 보복인사가 아니라 당사자 미로 사용되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임제의 변용은 그대로 우리 헌법 가 “시사주간지에 발표한 글에 문제가 있었으며, 돌출행동 등으로 법관으로 에 반하는 위헌적인 것이다. 서의 품위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양측 논의의 당부는 차치 이번 서기호 판사에 대한 재임용거부사건에서 보듯 현재의 법관연임제는 법 하더라도 최소한 “법관으로서의 품위”라고 하는 추상적이고도 애매한 문구 을 다루는 법률전문가에 의해 운영된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 가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는 이유로 작용하였음은 분명한 일이다. 기 짝이 없다. 법관에 대한 평정기준 자체도 명확하게 성립되어 있지 않은 터에, 연임제가 법관의 신분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는 이뿐 아니다. 왜 어떤 사유에 기하여 연임이 거부되었는지도 특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연임거 대표적인 예로는 유신시절인 1973년 양헌 부장판사와 그의 배석판사였던 장 부결정을 내리는 주체(법관인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며 그 위원은 누구인지, 수길·김성기 판사도 연임탈락하였다. 언론(동아일보, 1991. 5. 24. 19면)은 나아가 그 결정과정에 당사자들의 참여와 의견·이의진술의 기회는 어떻게 보장 그 이유에 대하여 “71년7월 신민당사 농성 사건으로 구속된 서울대학생들에 되며 그 반론에 대한 응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거 게 무죄를 선고한데 대한 보복”이라는 양헌판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임기 나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법관연임제는 그 자체 위헌적이라 하지 법관들로 하여금 자신의 만료가 아니라 헌법개정을 이유로 법관의 재임용을 거부한 경우도 적지 않 않을 수 없다. 법관들로 하여금 자신의 연임여부를 알 수 있는 그 어떠한 가능성 그렇지 않아도 관료적 다. 1961년 군사정권은 헌법개정을 이유로 모든 법관을 재임용하는 방식을 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법관의 신분을 극도로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 연임여부를 알 수 있는 계층구조에 입각한 취했고 그 중 47명은 의원면직, 5명의 법관에 대해서는 임용을 거부하였다. 두면서 그의 직무상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중대한 고리를 구성하고 있기 그 어떠한 가능성도 우리 사법체계 자체가 유신정권기인 1973년에는 9명의 대법관과 38명의 판사를 의원면직하였다. 때문이다.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또 전두환정권은 1981년 37명의 법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법관의 독립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도 이런 연임제의 난맥을 가중시킨다. 전술한 바와 따라서 법관의 신분을 침해하기 십상인데, 현행 법원조직법은 법관의 연임배제사유로 ①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해로 같이 오늘날 사법은 정해진 법규범을 기계적 혹은 도그마틱하게 적용하는 수준 극도로 불안한 상태로 이 상급자-하급자의 인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②근무성적이 현저 을 넘어선다. 법관의 개인적·주관적 가치판단과 태도로써 당사자들과 더불어 사 만들어두면서 그의 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③판사로서의 건을 법적으로 재구성하고 그에 적합한 법적 가치결정을 해나가며 이를 통해 그 관계를 근무평정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등을 열거함(제45조의2 제2항)으 때그때 새로운 법규범을 창출한다(혹은 그렇게 할 것이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 직무상의 독립성을 침해할 더욱 획일적이고 로써 남용의 우려를 배제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규정 자체도 “장해”의 서 “근무성적”의 불량 운운 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그것을 판단할 수 수 있는 중대한 고리를 일방적인 관계로 시간적 정도라든가 “근무성적”, “품위”와 같은 주요 요건들의 의미가 명확치 있는 어떠한 잣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판사로서의 품위”라는 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않음으로 인해 인사권자에게 상당한 재량여지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 념은 그 자체 명확성을 상실한 것으로 자의적인 해석과 집행이 예정되어 있다. 하락시키고 있다. 제를 안고 있다. 특히 법관연임제의 기초를 이루는 법관근무평정체제는 더더욱 문제적이다. 실제 외국의 경우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법관임기제와 그에 의 이 근무평정제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직무수행, 직무적성, 거한 연임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건강 등과 같은 사항과 분석력, 판단력, 자제력, 정의감과 같은 세부항목들이 상 악용된 경우는 거의 보고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프랑스의‘부동(不動)의 원 중 하로 평가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오리 칙’(principle de l'inamovibilit)과 같은 예에서 보듯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무중이다. 또한 그 평가주체는 법원장으로 되어 있고 배석판사의 경우에는 소속 신분이 보장되는 문자 그대로 임기의 연장인 연임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보는 부장판사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평가내용이나 척도, 것이 더 적확한 해석일 것이다.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평가방식도 상급자에 의한 일방적·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일상적인 용어법에서는 법관연임제라는 말보다는 획일적, 일방향적 평가에 그치고 있어 그 효율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평가받는 자 법관재임용제가 더욱 자주 쓰인다. 임기의 연장이라는 의미에서 연임이 아니 가 평가자인 상관에 그대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라, 임기만료에 따른 새로운 임용의 재량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재임용의 의 이렇게 법관의 직무에 대한 통제를 다른 법관 특히 “상급자”인 법관의 일방적 1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5
  • 10. 평가에 일임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요청을 정면에서 침해하는 것 는 법관계층제에 있다. 과거에는 법관의 직급을 단계구조로 만듦으로써 그리고 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관료적 계층구조에 입각한 우리 사법체계 자체가 법 현재에는 직급의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직급구조를 그대로 직위체제로 관의 독립을 침해하기 십상인데, 이 상급자 - 하급자의 관계를 근무평정으로 변환하여 존치시킴으로써 우리 법원은 독립된 법관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 더욱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로 하락시키고 있다. 상급자에 의한 하급자의 의 의사가 일사분란하게 전체 법관의 행동과 의지를 결정하는 단일체로 만든다. 통제가 실질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가능하게끔 법원을 구조화하는 것이다(더 그리고 법관연임제는 법관근무평정제와 결합하면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구성 구나 평정의 대상은 평판사일 따름이라는 점에서 차별의 문제도 발생한다). 되는 이러한 법관단일체의 원칙을 강화한다. 하위의 법관이 상위의 법관(주로 법 헌법은 단순히 “연임”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있을 뿐, 어떤 요건과 어떤 원장 및 소속 부장판사)에 종속되도록 강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 것이다. 절차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실제 우리나라의 법원에서 법관은 결코 동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다른 법관과 의 상태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침묵이 대법원규칙을 제정하는 입법자의 수평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십수개의 단위로 누적되어 있는 계층구 자유로운 형성의 여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의 독립이 우리 헌법에 조 속에서 일정한 단계를 차지하면서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수직적 관계를 맺고 서 가장 중요한 지향 중의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있는 하나의 구성인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법관은 지방법원합의부 배석판사에 위해서는 법관은 내부적인 통제로부터도 원칙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 서 출발하여, 지방법원단독판사, 고등법원배석판사, 대법원재판연구관, 지방법 에서 이 “연임”의 규정은 가능한 한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즉, 그것은 원부장판사, 고등법원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대법관, 대법원장 등에 특별한 '비행이 없는 한'(during good behavior) 연임되는 것으로 한다는 개 이르는 수많은 계층단계 속에서 그 승진의 상승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으로 념이 적절한 것이다. 환언하자면 상시적인 근무평정을 폐지하고 법관이 더 자신의 능력과 법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정하게 된다(여기에 사법연수원 기수 이상 법관의 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한 비행이 일어나는 때에 그 에 의한 위계와 경판·향판과 같은 근무지에 의한 서열화 등이 가중된다). 이 각각 의 임기만료와 함께 그를 법관직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해 의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그 평가의 결과로써 한 보인다는 것이다. 단계 한 단계 올라가다가 고등법원부장판사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발탁인사라고 헌법개정의 기회가 있다면 법관임기제를 폐기하고 법관종신제를 취하는 하는 ‘선택받음’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보기 나름으로는 우리나라 법관의 일대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 경우 법관에 대한 통제는 금고이상의 형벌이나 징 기가 전부 이 고등법원부장판사로의 발탁이라는 하나의 단위에 매달려 있는 것 계, 그리고 대의제적 민주성이 담보되고 있는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 및 헌법 같은 구조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재판소의 탄핵결정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하자있는 법관 에 의한 재판으로부터 당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심제도의 확충과 더 문제는 이런 구조 속에서 법관의 독립은 현저하게 깨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불어 재판소원제도가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199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법관을 상대로 실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법원 내부의 상급자로부터 재판에 대한 청탁이나 압력을 3.3. 법관계층제 받은 적이 있느냐 는 문항에 대해 “전혀 없다”는 21.5%(N=105)에 불과하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보통” 이상)을 한 법관은 22.3%(n=109)에 이른다. 대법원 법관연임제가 법관에 대한 압박이나 간섭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장을 정점으로 구성되는 법원 내부의 계층구조가 나름의 영향력행사구조로 중 그것이 법관임명권자에 의해 남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관임명 첩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조사결과인 것이다. 일전에 한 부장판사가 이런 식 권이 대통령에게 있을 때 그 남용의 양상이 너무도 쉽게 나타났었다는 사실 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법관인사제도에 대하여 “사법부 독립과 민주화를 가로막 은 우리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법관임용권이 대법원 는 위헌적 제도”라고 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하고(헌재 1993.12.23, 92헌 장에 있는 바, 이 경우에도 재임용제는 사법과 법관의 독립에 반하는 것이 되 마247 각하), 다른 소장판사는 이 법관서열제도를 골품제도나 카스트에 비유하 는가? 그 답은 일제하에서의 식민사법이 구축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 면서 “고위법관 출신 인사들이 등산길에서도 서열순으로 걷는다는 말이 있을 정 16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7
  • 11. 도”라는 등의 비난을 퍼붓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포괄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대하고도 조 이 때문에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제기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에서 법조일 직화된 법관인사행정체계는 그 자체가 법관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위계 원화를 전제로 한, 법관의 서열구조 및 직급제 자체의 폐지를 향한 주장이 끊 질서에 의한 상명하복식의 업무구조를 구성해낼 개연성을 항시적으로 안고 있 이지 않게 되었다. 즉, 법관을 대법원장, 대법관 및 판사의 3단계로만 구획하 다. 대법원장이 법원계층조직의 정점에 자리 잡고 모든 법관들을 효과적으로 통 고 있는 우리 법원조직법(제5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대법원장, 대법관을 제 제, 규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와 여건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이 법원행정처 외한 모든 법관은 동일직급, 동일직위로 하되 소속만 지방법원, 고등법원 단 이기 때문이다. 위로 구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각급 법원에 존재하는 부 요컨대 법원행정처는 우리 사법권력을 입헌주의적 통제의 범위를 넘어 이상 장판사제도를 없애고 동등한 지위의 법관으로 합의부를 구성함으로써 실질 비대화하게끔 만드는 주범의 역할을 할 위험을 안고 있다. 모든 법원과 모든 법 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법관의 독립 뿐 아니라 합의제의 기본정 관에 관한 정보와 업무와 처분권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맥락에 신에도 충실한 개선방안이 된다. 물론 각 합의부의 재판장은 사건 단위로 그 서 보더라도 법관의 인사와 관련한 문제를 이 중앙기구에서 집중관리할 이유는 법관을 대법원장, 부에 속한 판사들 사이에서 순환방식이나 고참순으로 정하면 충분하며, 이때 없어 보인다. 기존의 법관인사위원회를 보다 실질화하여 문민통제하에 법관인 대법관 및 판사의 재판장은 당해 사건의 재판을 주재하는(presiding) 기능만을 수행하게 될 것 사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면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법의 지방분권화 한마디로 법관의 3단계로만 구획하고 이다. 가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고등법원 정도에 설치되는 법관인사기구에 일임하 인사행정이 지나치게 아울러 지법원장이나 고법원장과 같은 보직은 당연히 필요하다. 이 또한 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이 법원행정처의 법관인사관리체계에 ‘평판사’ 있는 우리 법원조직법 일정한 임기를 정하여 당해 심급의 판사 중에서 선임하되 임기종료 후에는 와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중앙집권화 되어 (제5조제1항)의 규정에 즉시 예전의 직위로 복귀하도록 하면 된다. 바탕으로 ‘승진’이나 ‘재임용’을 미끼로 상급자 혹은 중앙이 모든 법관을 통제하 있을 뿐 아니라 따라 대법원장, 대법관을 는 구조 자체를 혁파하도록 하여야 한다. 관료화되어 계층제의 제외한 모든 법관은 3.4. 법관인사와 법원행정처 정점에서 인사업무를 동일직급, 동일직위로 법관의 독립이라고 할 때 그 상대개념에는 법원행정도 존재한다. 실제 공 4. 민주적 사법을 위하여 포괄통제하고 있는 하되 소속만 지방법원, 식적인 차원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은 법원행정체 것이다. 계로부터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근무평정이나 그 결과에 기반한 법관인사위 법전 속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을 발견해야 하며....법의 형식 밑에 고등법원 단위로 구획하는 원회의 운영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이 법원행정체계의 한 부분인 셈이다. 서 전쟁의 고함 소리를 찾아야 하며, 사법의 형평성 밑에서 힘의 비대 것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나라에서의 법원행정은 과도하게 발달하여 어떻게 보면 세계적 칭성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장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 -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이 아닐 정도이다. 즉, 법관의 임용이나 보직발령과 같이 그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권한은 모두 대법원장에 집중되어 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법의 운용은 필연적으로 억압을 내포한 권력 작용일 수밖에 없다. 입법은 공개 그 장을 맡는 법원행정처라는 거대한 방계조직을 활용, 이들에 관한 인사자 와 토론이라는 의회주의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정치대립 속에서 다수결 료나 업무자료 등을 수집,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 원칙에 의한 역학관계의 결과로 나타난다. 법이 취하는 일반·추상성은 개별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술하였던 법관근무평정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집적하 자가 가지는 특수한 맥락성을 간과하기 일쑤다. 사법의 형평성 또한 어느 일방의 며 분석·평가하는 기구도 이 법원행정처이며 그에 기하여 법관의 승진, 전보 희생 위에 구축되는 인위적 균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은 등에 관한 총체적인 기안을 내는 곳도 이 법원행정처이다. 한마디로 법관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외친다. 인사행정이 지나치게 중앙집권화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관료화되어 계층제의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수많은 삶이 있고 수많은 역사가 있다.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19
  • 12. 그것은 그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며 나름의 가치를 구가한다. 법의 리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법관이 사회와 소통하고 시민의 눈높이에서 무지가 결코 따라잡지 못 하는 공간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법률관료에 의하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법의 무지로 인해 사법의 영역에서 결여된 공간을 회복 여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법, 법률형식주의에 따라 획일적으로 조성되는 규율 하는 행위이다. 법원 내부의 상급자가 규정하는 법과 도그마가 아니라 시민사회 - 그들은 사회보호라는 명분으로 ‘법의 욕망’을 내뱉으며 인간의 위에서 군 의 욕망과 지향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사건을 포섭함으로써 새로운 법적 상태를 림하고자 한다. 분명 사법은 권력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의 집적체인 헌법 만들어내는 것은 사법이 87년 체제의 형식주의를 벗어나 한 단계 고양된 수준으 은 이 많은 이야기와 삶과 역사의 복권을 요구한다. 인권을 말하며 민주주의 로 발전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특정한 정권의 이해가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와 를 요청한다. 모든 권력에 대하여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력일 그들의 법감정·정의감정에 귀 기울임으로써 국민의 사법, 민주적 사법을 구성하 것을 요구한다. 는 귀한 발 디딤을 해 나가는 것이다. 과거 법조엘리트가 독점하고 전유하던 법 최근 벌어진 서기호 판사의 연임거부사건은 우리 시대의 사법이 가져야 하 의 세계를 이제는 시민사회의 공유물로 분점하고 이를 통해 민주적인 법공동체 는 역할과 위상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법원수뇌 를 구성해 나가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인 것이다. 부의 부적절한 언사로부터 양승태 대법원장 이래 법원의 독립에 대한 국민적 문민정부 이래 줄기차게 제기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가 일면에서는 검찰의 우려가 짙어가는 판국에 벌어진 이 연임거부처분은 영화「부러진 화살」에 권력남용을 통제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다른 면에서는 법원의 구조에 착안하 서 드러난 국민적 사법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법원 측은 연임부적격 여 법관연임제 철폐를 비롯한 제반의 법관인사체계의 혁파를 지향하고 있음은 법관이 사회와 소통하고 사유로 ‘근무성적 불량’을 들고 있으나, 그 판단의 기준과 근거를 제대로 밝 이 점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법관의 신분을 강화하고 이에 기반한 최근 벌어진 서기호 판사의 히지 않음으로써 “사회적으로 ‘튀는’ 판사들을 제어하고 법원을 단속하기 위 법관의 독립을 충실하게 만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성되는 개개 시민의 눈높이에서 연임거부사건은 우리 시대의 해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의혹만 증폭시킬 뿐”(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이라 법관의 자유-독립보장에 의한 자유공간의 형성-는 과거와는 달리 시민사회와의 현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법이 가져야 하는 역할과 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통으로 귀결되어 사법의 민주화 혹은 민주적 사법을 위한 소중한 디딤돌이 될 법의 무지로 인해 사법의 것이라는 점이다. 연임거부파동은 이 점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 위상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87년 체제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적인 권력행태는 사라졌거나 혹은 사라 영역에서 결여된 공간을 제기한다. 져가고 있다. 그 정치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들어오는 것은 경제권력과 관료 회복하는 행위이다. 권력이다. 민주화의 성과를 시민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국가로서의 관료가 누리는 것이 실상이다. 법원은 이런 경향의 한 칸을 차지한다. 종래 권 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위력에 종속되어 있다가 민주화의 틈을 타고 또 다른 국가권력의 지위를 구가하고자 한다. 법관연임제가 군사정권에서와는 전혀 다른 구조에서 해악을 발산하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그것은 대법원 장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한 법원구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정치권력과 그 힘을 분점하는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다. 민주화의 과정을 몸으로 경험 한 세대들이 법원의 하부구조를 차지하게 되는 최근의 상황에서 그들의 ‘일 탈’을 예방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다단계식 법원계층제 와 막강한 법원행정처를 활용한 법관인사권이다. 서기호판사에 대한 연임거 부처분은 한 본보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침해되는 법관의 독립은 종국에는 우리 사법체계를 시민사회와 유 20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1 _법관연임제와 민주적 사법 21
  • 13. 를 폐지하는 것도 논의,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초점2 ] 그러나 단지 이 조항만을 이유로 헌법 개정 논의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 므로, 당장에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 논의 에 국한하기로 합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법원조직법상의 ‘연임 부적격’ 사유에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관한 위헌성 여부만 논하기로 합니다. 가. 헌법이 정한 법관의 신분보장 규정과 연임제도의 충돌 헌법은 법관에 대하여,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헌법은 법관에 파면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관의 신분보장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위한 대하여, 탄핵 또는 글 _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것으로서 법관의 파면과 강제퇴직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고 이상의 형의 그런데 한편으로 일반법관의 임기를 10년으로 하여 법률로 연임할 수 있도록 선고에 의하지 우리 헌법상의 하고 있습니다.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법관연임제도는 제헌헌법 그런데 법원조직법 제45조의 2 제2항 제2호에서 정한 연임발령을 하지 아니 않도록 하고 시절부터 있었는데, 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할 수 있는 사유로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 있습니다. 법관의 헌법 교과서 등에서는 그 할 수 없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2005. 3. 신분보장은 법관의 이유를 ‘법관의 보수화나 저의 이번 연임 탈락 사태는 법관연임제도의 도입 배경과 존치 필요성에 24.에서야 신설된 것입니다. 당시의 개정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재판상 독립을 위한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관하여 근본적으로 의문과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저 역시 헌법에 ‘판사의 연임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규정이 미비되어 이를 신설하려는 것임. 판 것으로서 법관의 라고 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의문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사의 연임제도가 객관적으로 운영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됨’(법제처 홈페이 파면과 강제퇴직을 그런데 그 연임제도가 합리적인 것이라면 왜 1997년까지 3명의 법관밖에 지, 재개정문). 제한하고 있는 탈락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번까지 15년간 아무런 탈락자도 없었는지, 이 또한 2007. 5 1. 개정된 법원조직법 제44조의2는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 것입니다. 번에는 왜 굳이 sns에 가카빅엿 글을 올리고,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주도적 무성적을 평정하여 그 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시킬 수 있다’고 하였는데, 2011. 으로 나섰던 저에 관하여, 실제로는 그러한 사유와 무관하게 오로지 ‘근무성 7. 18. 개정된 법원조직법 제44조의 2 제3항에서는 인사관리뿐 아니라, 아예 연 적’만을 이유로 연임 탈락 결정을 했는지 설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심사에 반영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헌법상의 법관연임제도는 제헌헌법 시절부터 있었는데, 헌법 교과서 결국 위 두 가지 입법 연혁을 살펴보면, 헌법에 연임제도가 규정되어 있기는 등에서는 그 이유를 ‘법관의 보수화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라고 하고 있습 하나, 2005년에서야 법원조직법에 연임 부적격 사유가 제시되었고, 그나마 ‘근 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현행 연임제도는, 그 본래 취지에 반하여 정치 무성적 현저히 불량’ 관련 연임사유에 근무평정자료를 반영하도록 한 것도 최근 적으로 예속된 대법원장에 의하여 악용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에서야 개정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재임용 탈락한 판사들은 보수적이거나 관료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는 헌법상 연임제도가 입법 미비로 인해 사문화된 것이었음에도, 언제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 개혁을 주장하고 정권의 표현의 자유 억압을 비판했던 정치권과 대법원장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적용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에 예속된 대법원장이 사실상 법관의 파면 규정을 그렇다면, 향후 헌법 개정 논의가 시작될 경우 아예 헌법 자체의 연임제도 회피하여 법원 개혁을 주장하는 평판사들을 관리,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 22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2 _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23
  • 14. 던 것입니다. 3) 지난 10년간 근무평정의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이 담보된 적이 없는데, 헌법이 정한 법관의 신분보장은 형식적인 신분보장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를 근거로 연임 부적격 심사를 한다는 것은 위헌적이고 부당합니다. 신분보장까지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헌법상 연임제도 부분은 신 왜냐하면 근무평정은 객관적 통계자료만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성, 분보장 규정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균형감, 책임감 등 주관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지표가 포함되고, 그것도 법 만 그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원장이 단독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법원장에 대한 다면평가를 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없는 이상, 과연 그 법원장이 공정하게 평정했는지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나. ‘근무성적 현저히 불량’규정의 위헌성 또한 근무성적평정규칙상, 근무평정은 비공개이기 때문에, 1년 단위로 혹은 최소한 2~3년 단위로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명할 기회도 없습니다. 1) 근무평정을 연임심사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 이렇게 되면 자신의 근무평정이 어떻게 매겨지는지도 모르는 채 10년 동안 지 개정된 법원조직법에서는 근무평정의 기준으로 ‘사건처리율과 처리기간, 내오다가, 필자의 경우처럼 연임발령 3주 정도를 남겨둔 시점에서 갑자기 ‘근무 상소율, 파기율 및 파기사유 등이, 자질 평정인 경우에는 성실성, 청렴성 및 성적 현저히 불량’이라며 통보받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방어권을 충실히 행사 친절성 등이 각각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처리율과 상 하고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소율 등은 재판의 독립성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이미 일반 기업의 정규직 사원조차도 근무평정이 통보되고 이의제기 절차가 심사대상자인 판사 가지고 근무평정을 하는 것도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나아가 연 보장되며, 평가자가 과연 공정하게 평가했는지를 묻는 상향식 평가도 이루어지 헌법상 연임제도 부분은 모두가 잠재적 연임 임심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고 있는 마당에,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원이 이렇게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서 신분보장 규정의 본질적 탈락자의 위험에 또한 성실성, 청렴성, 친절성 등은 주관적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으 연임심사를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내용을 침해하지 않도록, 처해지므로, 파면의 로서, 이러한 사유들을 가지고 연임심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의적 판단 그리고 명확하게 사유를 한정하고 있는 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4) 상대평가의 위험성 - 연임심사 기준의 구체화 규정되어야만 그 충돌을 헌법상 신분보장 설령 근무평정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상대평가는 해당 법원의 누군가가 ‘하 피할 수 있습니다. 규정이 사실상 2) 근무태만인 판사에 대하여는 징계절차로 충분 ‘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해당 법원의 비교대상인 단독판사 모두가 평 무력화됩니다. 판사의 연임심사 기준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도제식 균치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지 그러한 ’하‘ 평가를 여러 차례 판사 양성 시스템인 현재의 경력법관제도하에서 법원 재판에 대한 불신과 불 받아 전체 심사 대상자의 하위 2%라는 이유만으로 연임 탈락 사유로 삼는다면, 만이 누적되다 보니 불성실, 근무태만인 판사를 걸러내야 한다는 요청에 의 필연적으로 해마다 누군가는 연임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해서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심사대상자인 판사 모두가 잠재적 연임 탈락자의 위험에 처해지므 그런데 일반 정규직 사원의 경우도 불성실, 근무태만이라고 하여 곧바로 로, 파면의 사유를 한정하고 있는 헌법상 신분보장 규정이 사실상 무력화됩니다. 해고하지는 않습니다. 징계사유일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판사에 대하여 따라서 이를 막으려면, 최소한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매년 근 유독 징계가 아닌 연임 탈락이라는 잣대를 대는 것은, 헌법상 신분보장 규정 무평정을 ‘해당 법원의 같은 업무 담당하는 판사들 과 맞지 않고,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계약기간 만료를 원인으로 계약 의 사건처리율, 항소율 등 평균치보다 50% 이상 연장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떨어질 경우에만 경고를 주고, 이러한 경고가 3회 명예를 중시하는 판사에게 근무태만과 불성실을 이유로 한 징계처분은 매 이상 경우 연임 탈락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법 우 치욕스러운 것이어서, 이를 견디기 힘든 판사가 스스로 사직하는 것은 별 에 규정하여야 합니다(50%나 3회 이상은, 모두 예 개의 문제입니다. 를 든 수치이고, 사회적 논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24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vol.99 초점 2 _법관연임제도의 문제점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