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Korea’s economic growth and government’s role: Past, present and future)
Sub Title: 과거, 현재, 미래
Material Type: Report
Author(Korean): 고영선
Publisher: 서울:한국개발연구원
Date: 2008
Pages: 461
Subject Country: South Korea(Asia and Pacific)
Language: Korean
File Type: Documents
Original Format: pdf
Subject: Economy < General
Holding: 한국개발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2. 발 간 사
정부가 어떤 역할을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한 논란은
흔히 시장 대 정부의 구도 속에서 진행된다. 시장지향적인 논객들은 정
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넓혀야 한다
고 주장하고, 정부지향적인 논객들은 그 반대를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국민후생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는 점에 동의하
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외개방, 복지, 조세, 민영화 등의 분야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때로는 첨예한 논쟁이 전개되기도 한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이런 논란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소득수준이 높아
지고 사회가치가 다양화되면서 앞으로 이런 논쟁은 더욱 첨예하게 전개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고는 정부의 여러 역할 가운데 경제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기존
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과정에
서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관념적․이념적 논의에서 벗어나 여러 분야에 걸친 이론
적․실증적 근거를 찾아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현시점
에서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제도 및 정책개선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
였다.
이를 위해 본고는 먼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정의하고, 세계적 흐름
을 살펴본 후에 이에 비추어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정부가 수행한
역할을 평가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여건을 조망하고
향후의 정책방향을 정리하였다.
그동안 수요가 많았음에도 이런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그
만큼 연구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본격적인 첫 시도라는
3.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하나, 동시에 그 한계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본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한 차원 높은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또 본고를 집필한 고영선 박사와 본고의 편집과
정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은 유영미 행정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2008년 11월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현 정 택
4. 목 차
발간사
요 약 ·································································································· 1
제1장 서 론 ···················································································· 5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 10
제1절 사유재산권의 보호 ···························································· 11
제2절 시장실패의 교정 ······························································· 12
1. 시장실패의 이유 ·································································· 12
2. 정부의 직접적 개입이 갖는 한계 ········································ 21
3. 민간을 통한 공공서비스의 공급 ·········································· 24
4. 규제개혁 ············································································· 30
5. 산업정책과 시장실패 ··························································· 41
6. 소 결 ················································································· 48
제3절 가치재의 공급 ··································································· 50
1. 공공선택이론의 관점에서 본 가치재 ··································· 50
2. 가치재의 개념적 근거 ························································· 51
3. 문화예술부문에 대한 정부지원 ············································ 53
4. 소 결 ················································································· 56
제4절 소득과 부의 재분배 ··························································· 56
1. 재분배정책의 동기 ······························································ 56
2. 재분배정책의 수단 ······························································ 59
5. 3. 재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 63
4. 복지국가의 변천과정 ··························································· 68
5. 국가 간 재분배정책의 차이 ················································· 72
6. 경제․사회 여건의 변화 ······················································ 84
7. 최근의 해외동향 ·································································· 94
8. 소 결 ··············································································· 113
제5절 거시경제의 안정화 ··························································· 114
1. 안정화 정책의 의미 ··························································· 114
2. 통화정책 ············································································ 117
3. 환율정책 ············································································ 125
4. 재정정책 ············································································ 131
5. 소 결 ··············································································· 141
제3장 한국경제의 발전과정 ························································ 142
제1절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과 정부의 역할 ······················· 143
제2절 일제 식민통치의 영향 ····················································· 145
1. 군수공업화론과 개발국가론 ··············································· 145
2. 강한 국가(strong state)의 형성 ············································ 148
3. 사유재산제도의 확립 ························································· 150
4. 통제경제체제의 도입과 금융억압 ······································· 151
5. 노동권리의 억압 ································································ 153
제3절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 155
1. 사유재산제도의 확립 ························································· 155
2. 농지개혁 ············································································ 157
3. 경제부흥계획과 원조 ························································· 159
4. 환율 및 수출입 정책 ························································· 162
17. 참 고 목 차
<참고 1> 각국의 민영화 추이 ···································································· 25
<참고 2> 스웨덴 사회보험제도의 변천 ······················································ 98
<참고 3> 스웨덴의 연금개혁 ···································································· 103
<참고 4> 스웨덴의 시장형 기제 도입현황 ··············································· 108
<참고 5> 잠재성장률 ··············································································· 115
18. 요 약
한국은 1960년대에 본격적인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추구한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루었다. 세계적으로 개발도
상국 가운데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성장을 유지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
한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각
국 정부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
부의 역할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어떻게 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경제적 역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살펴본 후에, 이런 관점에서 한
국정부가 수행한 경제적 역할을 총괄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1)
1.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전통적으로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① 사유재산권의 보호, ② 시장실
패의 교정, ③ 가치재의 공급, ④ 소득과 부의 재분배, ⑤ 거시경제의 안
정화로 구분된다. 시장실패의 교정이란 자원배분을 민간시장에만 의존
할 경우 발생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활동 일반을 말한다. 가치재의 공급이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
하기 위해 필요한 재화를 공급하는 일을 말한다. 소득과 부의 재분배란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조세 및 지출 정책을 통해 소득과 부를
1) 보다 간략한 형태로 출간된 논문으로는 고영선(2007a)을 참조하라.
19. 2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계층 간에 재분배하는 일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거시경제의 안정이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단기적으로 경기변동의 폭
을 줄여나가는 일을 말한다.
각국은 이러한 각 영역에서 가능한 한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늘리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시장기구의 원활한
작동을 돕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시장실패의 교정을 위해
설치한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시장으로 돌려보내고, 상품시장․금융시
장․노동시장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재분배를 위한 사회보장 및
사회서비스 공급에 있어서는 경쟁체제를 확대하는 추세이며, 거시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물가안정목표제, 중기재정관리체계, 자유변동환율제도
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정부역할의 전방
위적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분야에서는 시장개입이
줄어들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시장실패가 남아 있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또한 소득재분배정책의 부분적인 개편에도 불구하고 복
지국가의 전반적인 후퇴는 목격되고 있지 않다.
2. 한국경제의 발전과정
한국은 1960년대 이래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수출산업 및 중화학공업과 같은 특정 부문을 집중 지원하
기 위해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높은 수입장벽, 독과점 보장 등의
수단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일정한 성과를 낳기도 하였으나 동
시에 많은 부작용을 배출하였다.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물가불안, 노동운동의 탄압이 그것이다. 또한 정부와 민간 사이에
위험공유체제가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 및 금융 부문에 광범위한
부실이 누적되었으며, 결국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정치인,
관료, 일반국민 모두 정부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는 경향이 생겼으며, 이
는 시장경제질서의 구축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경제위기는 이러한 문
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의 유산을 완전히 청
산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주도의 성장전략 가운데 특히 논란이 많은 부분은 중화학공업
20. 요 약 3
육성정책이다. 일부에서는 동태적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중화학공업화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는 한
국과 같은 정도의 정부개입 없이 한국보다 더 높은 성장을 달성했던 점
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해외시장 지향성을 제일의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
으로 추측된다. 한국정부는 중화학공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
해 수출시장 확보가 필수적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리고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출 100억달러를 달
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외시장 지향성은 중화학공업화에 참여한 민
간기업들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빠른 생산성 향상과 국민소득
증대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3. 정부역할의 재정립을 위한 과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여건 변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목격되
는 것은 세계화․지식기반경제․도시화의 추세이다. 특히, 산업 내 무역
의 증대는 비교우위보다 규모의 경제가 교역패턴을 결정짓는 요소로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어떤 제품이 주력 수출상품
으로 부상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환경 변화로는 한국과 선진국 사이
의 기술격차 해소, 금융시장의 발달, 소득분배의 악화를 들 수 있다. 특
히, 기술격차 해소는 기술투자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
고 이에 관한 정부의 정보우위도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정부부문이 수행한 역할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
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맞추어 분야별로 역할을 재정립할 필
요가 존재한다. 과거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
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시장주도의 경제성장이 보다 바람직하다. 이것은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정부는 민간 경제주체
들이 생산적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즉, 거시경제
의 안정화, 미시적 유인구조(기업의 혁신․투자․고용 유인 및 개인의
21. 4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근로․저축 유인)의 개선, 혁신자원(금융․기술․인적자원)의 원활한 공
급, 사회통합의 제고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대내외 개방의
확대 및 경쟁정책의 강화는 기업의 혁신유인을 높여 생산성 증대에 기여
한다. 정부주도로 R&D 투자를 확대하는 것보다는 경쟁여건을 제고하는
것이 국민경제의 생산성 증대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고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금융시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단기
적 경기조절은 통상적으로 통화당국이 물가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통화
정책의 일환으로 수행해야 한다. 환율의 추세적 움직임을 바꾸기 위한
외환시장의 개입 역시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이다. 또 특
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정보 외부성과 같은 특정의 시장
실패를 치유할 수 있을 경우에만 시행되어야 한다. 중소기업․농업 등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대한 각종 정부지원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경제
성장과 사회발전은 이러한 각종 제도와 정책이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기
대했던 효과를 발휘할 때 그 효과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혜
택이다.
22. 제1장
서 론
한국은 1960년대에 본격적인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추구한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루었다. 한국의 1인당 소득
은 2007년 가격으로 1960년 138만원에서 2007년 1,863만원으로 13.5배
증가하였고, 미국 대비 비율은 1970년 16%에서 2006년 52%로 상승했다.
이와 함께 삶의 질도 빠르게 개선되어 평균수명은 1960년 52.4세에서
2006년 79.2세로 1.5배가 되었으며, 영아사망률은 1960~65년 출생 1,000
명당 70.0명에서 2000~05년 4.7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에서 탈피하여 민주주의적 사회질서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2)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 가운데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성장을 유지
한 나라는 많지 않다(World Bank[1993]).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과
의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현상을 경험하였다. 또 몇 년간 높은 성장
률을 보이더라도 다시 성장이 둔화되어 결국 선진국 따라잡기에 실패하
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반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속적 경제성장(sustained growth)을 통해 선진국과의 소득격차를 줄여
가고 있다.
이처럼 유독 동아시아 국가들만 지속적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예를 들어, World Bank(1993)는
2) 자료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1인당 소득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http://ecos. bok.or.kr), 미국의 1인당 소득은 OECD(http://www.oecd.org), 평균수명은
OECD(上同) 및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kosis.go.kr), 영아사망률은 국가통계포털
(上同)이다.
23. 6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요인으로 거시경제의 안정, 인적자원에 대한 투
자,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시장과의 통합, (비교적) 깨끗하고 효율적인 관
료제도 등을 꼽는다. 즉, 정부가 시장의 발전에 필요한 기초여건들을 충
실히 제공했기 때문에 지속적 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은 시장친화적 견해(market-friendly view)라 불린다. 이에 반해 Amsden
(1989), Wade(1990) 등 개발국가적 견해(developmental-state view)를 지지
하는 사람들은 개발도상국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Rodrik(2006) 역시 나라마다 직면하고 있
는 성장저해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재량적인
시장개입정책이 성장촉진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러한 논의가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관한 논의
라는 점이다. 개발국가적 견해에서조차 어느 정도 경제개발이 이루어지
고 시장이 성숙한 후에도 시장개입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
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들어 정부가 적극적 시장개입에서 점
차 벗어나 본격적으로 대외개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 발생한
경제위기는 이 추세를 가속화시켰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IMF 등
국제기구와 그 배후에 있는 선진대국들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3) 그러나 그보다는 그동안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상품․금
융․노동 등 각 부문의 시장이 심화됨에 따라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는 단지
이러한 변화에 있어 촉매역할을 하였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대내외 여건이 바뀜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끊임없이 재정립되어 가고 있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근대적 의
미의 정부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소
유권과 지배권은 국민에게 있고 정부의 목적은 국민후생의 증대에 있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는 원칙은 19세
기 이후에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확립된 뒤에도 정부가
수행하는 구체적인 역할은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20세기 초까지 정부
3) 예를 들어, Stiglitz의 신문기고(스티글리츠[2008. 12. 8])를 참조하라.
24. 제1장 서 론 7
의 역할은 국방․치안 등 기본적인 공공재의 공급에 주로 국한되었다.
19세기 말에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
으나 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그 후 20세기 들어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선진국에서는 정부규모가 급증하고 경제․사회의 여러
분야로 정부의 활동영역이 급격히 넓어졌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0년대 이후에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
나고 있다.
제2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정부가 수행하는 경제적 역할은 사유재
산권의 보호, 시장실패의 교정, 가치재의 공급, 소득과 부의 재분배, 거
시경제의 안정화로 구분될 수 있다. 각국은 이러한 각 영역에서 가능한
한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늘리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시장기구의 원활한 작동을 돕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실패의 교정을 위해 설치한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시장으로 돌려보내고, 상품시장․금융시장․노동시장의 규제완화를 추
진하고 있다. 재분배를 위한 사회보장 및 사회서비스 공급에 있어서는
경쟁체제를 확대하는 추세이며, 거시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물가안정목표
제, 중기재정관리체계,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정부역할의 전방위적 축소를 의
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분야에서는 시장개입이 줄어들고 있
지만, 본질적으로 시장실패가 남아 있는 분야에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경쟁정책 및 금융시장감독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
에서 시작한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각국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응급조치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역할
이 여전히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또 정부실패와 마찬가지로 시장실패
역시 현존하는 위험이며, 경제․사회 여건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
로 이러한 위험이 시현되었을 때 현명하게 대응하는 일이 중요함을 보
여준다.
후발 개도국인 한국에서 정부의 일차적인 역할은 경제성장을 촉진하
는 데 두어졌다. 제3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개발연대 동안 정부는 금
융․노동․상품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직접적 개입을 통해 빠른 성장을
25. 8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달성하였다. 이러한 개입은 외부효과, 정보 비대칭성, 금융시장의 미발
달과 같은 시장실패의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수
출과 투자를 촉진하여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경제성장을 일구어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부작용도 낳았는데, 그러한 부작용으로는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으로 인한 금융산업의 자생력 상실, 정부와
민간 사이의 위험공유(co-insurance)로 인한 기업부문의 부채누적과 금융
부문의 부실화, 중화학공업화와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재벌로
의 경제력 집중, ‘성장통화’의 공급에 초점을 맞춘 통화정책으로 인한
높은 물가상승률, 정치적 억압에 따른 민주주의의 미발달과 국가적 자
치능력의 미개발을 들 수 있다.
1997년의 경제위기는 기업 및 금융 부문의 부실을 뒤늦게 해소하고
위험공유체제를 청산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대외개방, 금융감독,
통화정책, 기업지배구조, 노동시장정책 등의 분야에서 그동안 미루어 왔
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모두 정부
와 시장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민간의 자기책임
원칙을 확립하고,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며, 정부의 직접적 통제와 간섭을
줄이는 데 있어 큰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부의 불합리한 시장개입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다. 금융․의료․교육․문화․정보통신 등의 산업에서는 정부의 보
호 및 육성 정책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일부 강화되기도 한다. 이것
은 정책담당자나 일반국민들의 마음속에 정부개입에 기반한 과거 성장
전략의 성공사례가 너무나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개입이 낳은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한 인식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
서는 정부가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각 부문에서 불필요한 시장개입을
줄이고 반드시 필요한 역할은 강화해야 한다. 제4장에서 설명하는 것처
럼 현시점에서 특히 중요한 과제는,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제고하고, 기
업․근로자․소비자들의 미시적 유인구조를 개선하며, 인력․기술․자
본 등 혁신자원을 원활히 공급하는 일이다. 또한 사회통합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본 연구보고서는 현시점에서 정부와 시장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정의
26. 제1장 서 론 9
하고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제2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경제
적 역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특히, 각국이 민영화, 민간
위탁, 규제개혁 등을 통해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정책의 예측 가
능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서 제3장에서는 한
국의 경제발전과정을 설명한다. 그 초점은 정부와 민간 사이의 왜곡된
관계가 어떤 역사적 배경하에 형성되었으며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어떻
게 변하였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다. 제4장에서는 지금까지 한국정부가
수행한 경제적 역할을 총괄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다.
본 연구보고서는 종합적인 시각으로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을 제시하
고자 한다. 이를 위해 경제정책의 거의 모든 분야를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역사적 고찰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한 가능한 한 많은 문헌을
참고하여 중립적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의
단점은 자칫 논의가 너무 길어지거나 초점이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것이
다. 이러한 과오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인내를 갖고 본 연
구보고서를 읽어줄 것을 기대한다.
27.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4)
‘공공성’은 정책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어떤 사람들은 방
송․의료․교육 등의 분야에 정부가 깊이 간여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
로 이들 분야의 공공성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공공성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려운데, 대개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공공성이 있으므로 정
부가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어반복(tautology)에 불과하다. 또 일부
에서는 ‘공공성’을 ‘공공재’와 동일시하고, 공공재만으로는 정부개입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현진권[2008]). 그러나 다음에 설명하듯
이 공공재의 공급은 정부의 여러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므로
이 지적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공공성의 개념에 대한 이러한 혼란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전통적으로 정
부의 경제적 역할은 ① 사유재산권의 보호, ② 시장실패의 교정, ③ 가
치재의 공급, ④ 소득과 부의 재분배, ⑤ 거시경제의 안정화로 구분된
다.5) 이하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기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6)
4) 본 장은 그동안 필자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수행하였던 ‘정부의 역할’에 관한
일련의 연구(고영선[1997, 1998a], 고영선․윤희숙[2006], 고영선․김정호[2007])에
기초한 것이다.
5) 한편 Musgrave(1959)는 재정의 역할을 ① 자원배분 조정(allocation), ② 소득 재분배
(distribution), ③ 거시경제 안정화(stabilization)로 구분한다. 본고에서는 재정보다 넓
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본문에서와 같이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이 가운데 ‘사
유재산권의 보호’는 정부의 최소기능에 해당한다(Inman[1985]). 또 ‘시장실패의 교
정’과 ‘가치재의 공급’은 Musgrave(1959)의 ‘자원배분 조정’에 해당한다.
6) 여기에서 ‘정부’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본 보고서에서는 이
28.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1
제1절 사유재산권의 보호
사유재산권은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고 그것을 자유의사에 따라 관
리․사용․처분할 권리,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소유할
권리를 말한다.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
무라 할 수 있다.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개인의 신체적 안전에 대한 보호
를 포함하며, 타인의 부당한 간섭 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활동
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의 보호를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유재산권
의 보호는 보다 광범위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각 개인이 생산적
활동을 추구하더라도 이로부터 실제로 이득을 얻고 이를 마음대로 처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경제성
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제도주의적 접근에 따
른 일련의 연구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Aron[2000]; Acemoglu,
Johnson, and Robinson[2001, 2004]; Beck, Demirgüç-Kunt, and Levine[2003];
Rodrik, Subramanian, and Trebbi[2004]; Acemoglu and Johnson[2005]).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때로 정부의 다른 역할과 상충하기도 한다. 특
히, 정부가 조세를 부과하는 일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유재
산권에 대한 침해라 해석될 여지가 있다.7) 그 외에도 다음에 설명하듯
이 가치재의 공급이나 소득 및 부의 재분배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사유재산권 또는 개인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이
유로 Nozick(1974)과 같은 자유론자(libertarian)는 정부의 역할이 사유재
산권의 보호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역할이 사
유재산권 보호에만 국한되어 있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들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의 역할은 상이한 측면이 있으며 이들
간의 역할분담은 또 다른 중요한 논의의 주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고영선(근간)을
참조하라.
7) 예를 들어, 1894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개인소득세 부과를 위헌으로 판정하였는데,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 후에야 연방정부는 개인소득세를 도입할 수 있었다(Alesina,
Glaeser, and Sacerdote[2001], p.221).
29. 12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구체적으로 국방․사법․치안 등의 공공서비
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개인 간의
경제적 분쟁을 해결해 주는 사법제도는 사유재산권 보호에 있어 핵심적
인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사유재산권의 일종인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제도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8)
제2절 시장실패의 교정
시장실패(market failure)란 개별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만 의존할 경
우 개개인의 후생이 극대화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
는 상황을 말한다.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함으로써 어느 누구의 후생
도 감소시킴이 없이 다른 누구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다. 즉,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을 도모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먼저 시장실패
의 이유를 살펴본다. 이어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어
떤 한계를 갖는지 설명하고,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사이에서 균형을 찾
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민간위탁 등의 시장기
제 도입, 상품․금융․노동 시장의 규제개혁, 그리고 산업정책의 역할
재정립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다.
1. 시장실패의 이유
가. 공공재의 존재
시장실패의 첫째 이유는 공공재(public goods)의 존재이다. 공공재의
첫 번째 특징은 같은 재화를 여러 주체가 소비하든지 혼자 소비하던지
개개인의 효용이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Samuelson[1954, 1955]). 이를
흔히 소비의 非競合性(non-rivalry)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깨끗한 거리는
8)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경우에도 정부가 무한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정 기간만 지적재산권을 보호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0.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3
[그림 2-1] 공공재의 개념
ΣMB(4)
ΣMB
MB
MB(4)
MB(3)
0 3 4 N
MC
고용된
청소부의 수
한계편익(MB)과
한계비용(MC)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보는 사람이 늘어나더라도 개개인
의 즐거움이 감소하지는 않는다.9) 이러한 공공재는 시장에서 충분히 공
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거리청소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거리청소를 위해서는
청소부를 고용해야 하는데, 청소부를 더 많이 고용할수록 거리를 더 깨
끗이 청소할 수 있다고 하자. [그림 2-1]에서 청소부 1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한계비용은 MC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의 한계편
익은 MB로 표시되어 있다. 고용된 청소부의 수가 늘어날수록 한계편익
은 줄어든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비용으로 3명의 청소부를 고
용할 때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이 일치(MB(3)=MC)하여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하게 된다. 1명을 더 고용할 경우에는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미
달(MB(4)<MC)하여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할 수 없다.
이제 모든 사람이 이 사람과 같은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다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비용으로 1명을 더 고용하여 거리를 더
깨끗이 만들 유인이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 1명을 더 고용하여 거리를
더 깨끗이 만들 때 얻는 한계편익이 한계비용을 미달(MB(4)<MC)하기
9) 이에 반해 私用財(private goods)의 경우 한 사람의 소비증가는 다른 사람의 소비감
소를 수반한다.
31. 14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때문이다. 따라서 거리청소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둘 경우 사회 전체적
으로 3명의 청소부만을 고용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얻는 한계편익
을 모두 합할 경우 이 합은 청소부 1명을 고용하는 비용을 초과(ƩMB(4)
>MC)한다. 따라서 정부가 각자에게 조금씩 비용을 분담시켜 1명을 더
고용하고 거리를 더 깨끗하게 청소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편익을
증대시키는 방법이 된다. [그림 2-1]에서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는 청
소부의 수는 N으로 표시되어 있다. N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을
수록 커진다.10)
이처럼 비경합성을 갖는 재화는 시장에 맡겨둘 경우 너무 적게 공급
된다. 여기에 더하여 非排除性(non-excludability)까지 갖추는 경우 무임승
차자(free-rider)들이 발생하여 재화가 전혀 공급되지 못할 수 있다. 소비
의 비배제성이란 특정 재화의 소비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
하도록 만들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거리청소의 예를 계속 들자면, 거
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청소부 고용비용을 분담시킬 수 없는 경우
가 이에 해당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재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으로 인해 시장을 통해 재화가 공급되지 못
할 때 정부는 재정지출을 통해 재화를 공급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조세 등의 강제적 부과금을 통해 조달한다.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는 재화를 의미한다. 어떤 재화
가 공공재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
는지 검토해야 한다. 흔히 공공재라 불리는 것들이 실제로는 공공재가
아닐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11) 또 다음에 논의하듯이 기술 변화나 시
10) [그림 2-1]에서 주의할 점은 공공재의 시장수요(ƩMB)를 도출할 때 개인수요(MB)를
수직방향으로 합하였다는 것이다. 私用財의 경우에는 개인수요를 수평방향으로 합
하여 시장수요를 도출한다.
11)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이용하
는 차량이 많으면 경합성이 성립한다는 점,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와 퇴출로를 막
아놓고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어 배제성이 성립한다는 점에서 고속도로는 엄밀한
의미의 공공재가 아니다. 고속도로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러 사람
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거나, 후술하는 외부효과(지역경제 활성화 등)가 발생하
기 때문, 금융시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여 민간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 또는 요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소
득 재분배를 도모할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질은 경제학적
의미에서 공공재의 성질과 다르다.
32.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5
장환경의 변화로 인해 공공재였던 것들이 비공공재로 전환될 수도 있음
을 고려해야 한다.
나. 시장지배력
시장실패의 둘째 이유는 독점과 같은 시장지배력이다. 시장지배력은
원료․정보․기술 등의 독점, 정부규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가운데 규모의 경제를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생산규모가 늘어날수록 평균비용이 줄어드는 산업의 경우 한 사
업자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여 독점적 시장구조를 형성시킬 수 있다.
독점사업자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게 되면 재
화공급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에 미달하여 시장실패가 초래된다.
이는 [그림 2-2]에 예시되어 있다. 초기투자비용이 매우 클 경우 평균
비용(AC)은 생산량(Q)이 늘어남에 따라 하락한다. 그리고 한계비용(MC)
은 평균비용(AC)을 하회한다. 만일 독점기업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
고 독점이윤을 추구하게 된다면 한계수익(MR)과 한계비용(MC)이 만나
는 점에서 생산(qm)하고 독점가격(pm)으로 판매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황은 수요곡선(AR)과 한계비용(MC)이 만나는 점에서 생산
(qc)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가격(pc)이 책정되는 것이다. 그림에서
[그림 2-2] 독점가격과 경쟁가격
손실
독점이윤
C,PC,P
qm qc
pm
pc
독점가격 경쟁가격
ACAC
ARAR
MCMC
MRMR
QQ
33. 16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보는 바와 같이 독점생산량(qm)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생산량(qc)보다
작고 독점가격(pm)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격(pc)보다 높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도록 정부는 민간 독
점기업에 대해 특정 수준 이하로 가격을 낮추도록 규제를 가하거나, 아
니면 공기업을 설치하여 직접 재화를 생산하기도 한다. 철도․전력․상
하수도․가스․우편․전화 등 소위 網산업(network industry)이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망산업이란 재화 및 서비스의 공급을 위해 대규모의 망(철
도망, 송전망, 우편망, 전화망 등)이 필요한 산업을 말한다. 많은 나라에
서 이들 산업은 공기업의 몫이었으며, 최근 들어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
으나 아직 공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또 민영화되더라도 독
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가격 및 개방접속(open access) 등에 관한 규제가
실시된다.
다. 외부효과
시장실패의 셋째 이유는 외부효과(externalities)의 존재이다. 외부효과
란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외부경제,
external economies) 또는 불이익을 주는 것(외부 非경제, external
diseconomies)을 말한다. 외부경제의 예로는 교육과 연구개발(R&D) 투자
를 들 수 있다. 교육은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뿐
아니라 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간접적인 혜택을 준다.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을 때 사회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이 가속화되
고, 사회적 안정 및 결속이 강화되는 등의 혜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개인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귀속되는 간접적인 혜택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혜택을 고려하여 자신의 교육에 투자할 이유가 크지 않다.
이로 인해 개인의 선택에 맡겨둘 경우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나
라에서 정부는 교육에 대한 지원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12)
마찬가지로 민간기업에서 수행하는 연구개발 투자의 혜택은 그 기업뿐
12) 교육지원의 또 다른 논거는 다음에 설명하는 가치재이다. 외부효과와 가치재 가운
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논거인지는 확실치 않다.
34.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7
[그림 2-3] 공해에 대한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때의 생산량 및 가격 변화
S2
S1
D
q2 q1
p2
p1
Q
P
보상비용으로 인한
(또는 환경세로 인한)
공급곡선의 상승
아니라 다른 기업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양성된
인력이 다른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생산된 지식이 다른 기업으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시장기구를 통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
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기업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까지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
우가 대부분이어서 개별 민간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유인이 줄어든다. 이
에 대처하여 정부는 직접 연구개발 활동을 수행하거나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 재정지원이나 조세지원을 제공하게 된다.
한편 외부 비경제의 대표적인 예로는 공해를 들 수 있다. 공해는 여
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데, 이러한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면 기업은 보상에 따른 비용증가로 상품의 판매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
다. 이에 따라 판매량과 생산량이 줄어들면 전반적으로 기업이 발생시
키는 공해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그림 2-3]에 예시되어 있다. 이 그림
에서 q1과 p1은 각각 피해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생산량 및 가격
이고, q2 및 p2는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때의 생산량 및 가격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시장기구만으로는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데, 이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 이상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만일 시
장기구를 통해 피해보상을 강제할 수 없는 경우 정부는 보상비용에 해
35. 18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당하는 만큼의 환경세(green tax)를 부과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을 줄
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
외부효과와 관련하여 유의할 점은 외부효과에는 시장기구 밖에서 발
생하는 것들만이 포함되며, 시장기구 안에서 발생하는 연쇄적인 파급효
과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의 소비는 크
든 작든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특정 재화(예: 한우 고기)에
대한 어느 한 사람의 소비가 늘어나면 시장수요가 증가하여 가격이 오
르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반대로 특정 재화
(예: 오페라 공연)에 대한 시장수요가 충분치 않아 공급이 존재하지 않
다가, 이를 수요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급이 발생하여 소비가 이루
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시장기구를 통해 발생하는 현상이므
로 외부효과에 해당하지 않는다(Liebowitz and Margolis[1994]).
라. 정보의 비대칭성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넷째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대기업의 수익성․위험도 등에 관한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대한 정보는 구하기
어려운 경우, 은행은 중소기업이나 가계에 대한 대출을 기피할 수 있
다.13) 이 경우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평균적인 투자수익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까지 대출을 확대하지 않
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공적 금융기관을 통해 직접 대출해 주거나, 은
행대출에 대해 신용보증을 제공해 주거나, 은행대출에 대해 이자의 일
부를 지원해 주게 된다.
정보 비대칭성은 逆선택(adverse selection)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마다 각각 사고확률은 다르다. 보험업
자가 개별적인 사고확률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이를 반영하여 개별 운
전자에게 서로 다른 보험료를 부과할 것이다. 그러나 보험업자는 평균
적인 사고확률밖에 모르기 때문에 동일한 보험료를 부과하게 된다. 그
13)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더라도 위험을 충분히 분산할 수 없을 경우에도 대출을 기피
할 수 있다.
36.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9
러면 사고확률이 평균보다 낮은 운전자들은 손해를 보게 되어 보험에서
탈퇴하게 되고 사고확률이 평균보다 높은 운전자들만 남게 된다. 이러
한 과정이 반복되면 가장 사고확률이 높은 운전자들만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결국은 보험시장 자체가 붕괴된다.
역선택과 더불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에 일단 가입하면 운전자가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경향
이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평균적인 사고확률이 상승하고 보험료가
증가하면 사고확률이 낮은 운전자는 보험에서 탈퇴하게 된다. 역선택
및 도덕적 해이로 인한 보험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는 모든 운전
자에게 자동차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마. 시장의 불완전성
시장실패의 다섯째 이유는 시장의 불완전성(incomplete markets)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여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와 같은 대규
모 공공시설의 건설을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데, 민간 금융시
장이 발달한 경우 민간에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여 고속도로를 건설하
고 통행료를 징수하여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금융시
장이 발달하지 못한 경우 정부가 공공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여
시설을 건설하게 된다. 또 지진이나 풍수해와 같은 천재지변의 경우 사
건 발생 시 피해규모가 너무 커서 민간 보험시장에서 위험을 인수하기
어려우며, 이로 인해 보험시장이 형성되지 못한다. 그러나 정부는 과세
능력을 기반으로 천재지변에 대한 보험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
제3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개발연대 중 우리나라 정부가 정책융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한 것은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보다 일반적으로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은 특정의 시장실패(동태적 규모의 경제, 기업 간 투자조율의 실
패, 정보 외부성)를 논거로 삼지만,14)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이 중요한 논거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14) 41쪽 이하의 논의를 참조.
37. 20 한국경제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바. 죄수의 딜레마로서의 시장실패
시장실패의 본질은 개인이 시장을 통해 서로에게 보다 유익한 거래
를 이룰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시장실패는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에 해당한다(Inman[1985]). 두 사람이 있는데, 공공재
를 생산할 경우 각각 6원의 편익을 얻고 모두 8원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가정하자. 이들은 공공재를 생산하기 위해 협동하는 전략(C)을 택할 수
도 있고 협동하지 않는 전략(N)을 택할 수도 있다. 이들이 모두 C를 택
할 경우 각각 4원의 비용을 부담하여 2원의 순편익(=6-4)을 얻는다. 만
일 한 사람은 C를 택하고 다른 사람은 N을 택한다면 C를 택한 사람은
-2원의 순편익(=6-8)을 얻으며 N을 택한 사람은 6원의 순편익(=6-0)을
얻는다. 둘 다 N을 택할 경우 각각 0원의 순편익을 얻는다. 이는 다음
[그림 2-4]에 그려져 있다.
이제 각 개인의 입장에서 상대의 전략이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자
신의 순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찾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개인
2가 C를 택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개인 1의 입장에서 C를 택할 때는
2원의 순편익을 얻고 N을 택할 때는 6원의 순편익을 얻는다. 따라서 개
인 1은 N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개인 2가 N을 택했을 경우를 생
각해 보면, 개인 1의 입장에서 C를 택할 때는 -2원의 순편익을 얻고 N을
[그림 2-4] 죄수의 딜레마
개인 1
C N
개인 2
C
2원
2원
6원
-2원
N
-2원
6원
0원
0원
주: 각각의 사각형에서 대각선 위의 금액은 개인 1의 순편익, 대
각선 아래의 금액은 개인 2의 순편익을 나타냄.
38. 제2장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 21
택할 때는 0원의 순편익을 얻는다. 따라서 개인 1은 N을 택하는 것이 유
리하다. 마찬가지로 개인 1이 어떤 전략을 택하든 개인 2의 입장에서는
N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두 N을 택하게 되어
각각 0원의 순편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 1과 2가 모두 무임승차(free-riding)를 노리도록
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협동하여 공공재를 생산하고 각각 2원의 순편
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15) 정부의 역할은 이처럼 개인 간
의 자발적 조율(coordination)이 불가할 때 강제력을 통해 조정이 이루어
지도록 하는 데 있다. Inman(1985)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장은 실패한
다. 그 근본이유는 개인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
려 할 때, 시장기구만으로는 이들이 협동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데 있
다. 그러나 모두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서는 종종 개인 간의 협동이 요구
된다. …… 외부의 누군가가 개인 간의 협동을 강제하지 않고는 비협동
의 결과로 나타나는 시장실패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그러한 협동을 강
제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p.672).”16)
2. 정부의 직접적 개입이 갖는 한계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가 실제로 이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경제․사회 여
건의 변화와 함께 정부의 직접적 시장개입이 한계를 갖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즉, ①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로 인해 정부개입이
15) 여기에서는 공공재의 예를 들었으나, 이 논의는 시장지배력, 외부효과, 정보 비대칭
성과 같은 일반적인 시장실패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각각의 경우에 협동을 통해
전체의 후생을 극대화한 후 이를 재배분한다면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을
달성할 수 있다. 즉, 시장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
16) “Markets fail. They fail for the fundamental reason that the institution of market trading
cannot enforce cooperative behavior on self-seeking, utility-maximizing agents, and
cooperative behavior between agents is often required for beneficial trading. …… Only
by externally enforcing cooperative behavior upon individuals can the non-cooperative,
market failure outcome be avoided. Government is one institution which has the potential
to enforce the preferred out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