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살다산인권센터 회원소식지
온 나라가 들썩들썩 합니다. 공포의
정치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
습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최소한의
민주주의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일상
이 무너진 곳에는 공포와 불신, 통제만
이 가득할 뿐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더 거론되어야 합
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이
무너지지 않게... 오늘도 화이팅!
2013
09
10
2. 2
밀양,
시간이 멈춘 곳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미래...
10월 공사가 시작되고, 주민들이 오르지 못하는
109번 현장을 올라가게 되었다. 인권침해감시단으
로 현장에 도착했는데, 산을 오르는 초입부터 경찰
이 많다. 물어보았다. “길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요” 경찰은 답했다.“업무방해를 할 위험이 있기 때
문입니다.”“저는 공사를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
만 인권침해 조사를 위해서 왔으니, 가게 해주십시
오.”그렇게 산을 오르게 되었다. 한 시간 십분 넘는
산은 꽤 가파른 곳이었다. 산꼭대기에 생길 거대한
송전탑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면 운동 삼아 오를
만한 절경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 산꼭대기에 나
무 밑둥이 다 잘려 나가고 산흙이 벌겋게 맨살을
드러낸 공사장이 있었다.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경찰이 공사장을 지키고 있었다. 한전과 시공사 노
동자들 50여명이 그곳에서 산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애국하는 사람이라고 말했
다. 내려오는 길, 다시 한 시간 10분을 되짚어 내려
오는 길. 윗 도곡마을 전 이장님은 구덩이에 고인
물을 보면서 “할매들 걸음으로는 한 시간 반은 족
히 넘는데, 목이 마르면 저런 구덩이 물도 마시
고...”라고 했다. 나는 그 산을 내려오며 지금 우리
는 미래세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되물어 보
게 되었다. 지금 전력의 필요 때문에 다음 세대가
더불어 살아야할 자연에게 이렇게 못할 짓을 해도
될 것인가. 발파 허가가 나면, 곧 단단한 돌을 폭파
할 예정이라 했었다. 그 수려한 산에게 인간은 무슨
자격으로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현재...
“외부 세력이라꼬? 이렇게 힘없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친구다. 벗이지. 외부세력은 경찰 아니
가?”밀양에서 국가는 60세는 젊다고 할 할매, 할배
01 특집
3. 3
들과 싸우고 있다. 그들의 팔을 비틀고 구덩이를 파
서 들어앉은 절박함을 사법처리하겠다는 엄포로 막
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참 좋았던기라.
우예 무슨 죄를 짓다꼬 이래 모진 일을 당하는 기
고.”가슴에 쌓인 한은 얘기 중간 중간에 눈물과 한
숨으로 터졌다. “우리가 뭐, 돈 달라 카드나, 우리
가 뭐 지어달라 카드나. 그냥 살던 대로 살게 해달
라는 게 이리 어렵나.”농번기에 맞춰 들어온 공권력
은, 지금 밀양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합법적 폭력에
불과했다. 아니다, 자기들이 하면 합법, 주민들이
하면 불법이니, 불법 깡패가 맞을 지도 모른다. 오
늘도 밀양은 전쟁이다.
과거...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할매가 가파른 산을 오른
다. 하루종일 버티려면 물도 있어야하고 밥도 있어
야 한다. 구부정한 할매는 지팡이 하나, 봉지 여러
개를 들고 산을 오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것
같던 박근혜 정부는 취임 일년도 지나지 않아, 노인
연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밀양의 노인들은
군화발로 짓밟았다. 인권침해가 무엇인지 상동면 여
수마을에서 교육을 하고 나온, 저녁 7시 넘은 시간
은 어스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은
전기세 하나 아끼려고 허투루 불하나 쓰는 법이 없
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도시로 돌아오던 길. 대구쯤
이었을까.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이 불야성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적어도 도시에 사는 우리는 밀양 깊
은 산속의 그 할매들에게 지역이기주의라는 입바른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과거를 죽이고,
얻겠다는 전력과 풍요와 속도와 이기심의 혜택을
깔고 앉은 주제에.
밀양에서 시간은, 그렇게 멈춰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도시로 돌아오던 길. 대구쯤이었을까.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이 불야성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적어도 도시에 사는 우리는
밀양 깊은 산속의 그 할매들에게
지역이기주의라는 입바른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4. 4
종북빨갱이를 묻는 사회라서
더 위험하다
다산인권센터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입장
1950년의 조지프 매카시의 유령이 2013년 대한민
국의 땅을 배회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산
주의자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
된 매카시의 주장은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
하면서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매카시가 던
진 메세지는 미국사회의 깊고 오래된 공포가 되었
고 수많은 정치인, 예술가, 교육자, 노동운동가와
시민들의 생각과 결사와 말할 자유를 앗아갔다. 수
백 명이 수감되었으며 1만 명 이상이 직장에서 쫓
겨났다. 찰리 채플린은 고향 입국이 거절되자 유럽
에서 생을 마쳤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공화당과 조
지프 매카시의 말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미
국 민주당이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
기 위해 매카시의 주장에 동참함으로써 수많은 피
해자가 쏟아지게 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
듯이 야당들은 여당과 함께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
안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뿐만 아니라 민주
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이석기를 옹호할 의도로 체
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여야 의원들은 빨리 커
밍아웃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나는 종북 빨갱이가 아니다” “너는 종
북 빨갱이가 아닌가?” 묻는 야만의 사회가 도래했
다. 그래서 우리는 입장을 밝힌다. 정말 위험한 것
은 종북 빨갱이를 확인하는 사회다. 북한을 추종하
는 것보다 체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보다 국정원
의 표현대로 내란을 음모하는 예비 모임을 갖는 어
떤 것보다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가
훨씬 더 위험하다. 사법기관에서 사실관계가 다루어
지기 전부터 의도된 소문을 정치적으로 유포시키고
수많은 시민을 예비범죄자로 간주하며 사생활을 파
괴하는 도청의 자유를 누리는 정보기관을 둔, 사회
가 더욱 위험하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함부
02 인권이슈
5. 5
로 공개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지킬 줄 모르는 언론이 존재하는 사회가 더욱 위험
하다. 의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요구할 능력조차 상실한 악의적이거나 무능력한 정
당을 둔 사회가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내란음모에 따른 체제의 위기가 아
니라 내란음모를 핑계로 사상과 양심과 생각과 표
현과 결사와 행동의 모든 자유를 빼앗기게 되었다
는 것이다. 정치인 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말을 하
는 모든 이들이 ‘북한’과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 않고 입장 발표하길 두려워하
는 현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이 양지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선에서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정치권
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국정원개혁과 해체를 말
한다. 심지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의도라 의심받
지만, 대통령조차 국정원 개혁을 말하는 이때 자신
들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국민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암약하는 ‘종북’ ‘빨갱이’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종북’과 ‘빨갱이’ ‘반국가단체’ ‘국
가보안법’ ‘간첩’조차 대세를 바꾸기에 적절치 않다
고 판단한 정보기관은 듣기에도 벅찬 ‘내란음모’와
‘여적죄’를 들고 나와 어마어마한 일이 우리 주변에
서 벌어지고 있다고 백색 가루를 뿌리는 중이다. 그
들의 수는 절묘하게 통했고 모든 시선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에서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로 모아졌다.
조중동과 방송 등 언론을 이용한 정치공작은 열흘
이 넘는 시간동안 기사와 주요시간대 뉴스들을 통
해 하루 종일 송출되었으며 수세에 몰린 국정원은
기사회생하며 정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야말로
6. 6
‘통합진보당’이라는 공공의 적을 앞세우며 모든 시
선의 뒤편에 숨어, 편하게 숨 고르며 공작정치와 정
보정치의 주권을 휘두르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국정원의 의도를 국민들이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순되게도 국면의 책임은 국정
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정
원의 뻔한 노림수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과 유관
한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들에게도 종북 딱지가 날
아들고 있다. 심지어 대학 강단에서는 학생이 강사
를 국정원에 신고하는 사례가 드러났다. 이렇게 되
면, 국정원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들을 얻
게 될 것이고 여당과 정부도 마찬가지 이득을 얻게
될 참이다. 시민사회는 실종되고 합리와 이성은 무
덤으로 갔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인권운동단체로써 여기에 주목한다. 첫 번
째는 당연히 분단체제로 인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 사회가 ‘혐오’하는 당사자에
게 가하는 편견의 깊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로 인해 우리 사회는 ‘주체
사상’또는 ‘북한’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평가에 이
르지 못했다. 소위 기존 사회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수많은 사상과 철학이 학문으로써 도입되는 때에도
위의 사상은 입에 올려서도 논의해서도 안 되는 금
기가 되었다. 그럼으로 금기의 영역은 욕망의 대상
이 되었다. 욕망의 대상이 된 ‘주체사상’과 ‘북한’은
그에 걸맞는 연구 또는 자유가 주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정체의 형상과 무게조차 확인할 수 없는 지경
에 이르렀다. 오히려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구는 ‘주
체사상’을 탐구하는 이들과 ‘북한’을 추종하는 이들
을 자신의 존재 의미로 삼고 있다. 국정원에게는
‘종북’의 위험보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더 중요하
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허하는 첫 번째
기표로써 ‘주체사상’과 ‘북한 논의’가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이유는 정말 정당한가? ‘이석기’나 ‘경기
동부연합’으로 지칭되는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
는 정말 합당한지 되돌아 봐야 한다. 끊임없이 언론
에 노출되는 이들은 ‘종북빨갱이’ 에서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인사들’이라는 표현으로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
신의 행위로써 법정에 서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법
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 모두 무죄를 추정 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인류가 인권의 기본토대를 구
축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싸워온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것을 모두 무너뜨릴 만큼 한국사회에서 ‘이
석기’와 ‘경기동부연합’의 단죄가 급한가. 이를 처단
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모두 실종되었다. 설령
비밀스런 회합과 비밀스런 모임과 위험한 발언이
존재했다고 한들 그것이 타인의 존재를 증오할 만
큼 혐오스러운 일이었는가. ‘혐오’의 밑바탕에 존재
하는 근본적인 힘은 ‘차별’이며 다른 것에 대한 분
리와 배제를 낳게 한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분
노와 학대는 나치와 같은 독재정치에 힘을 실어주
며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성과 합리의 죽음을 불러
온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혐오의 징표가 지금은 어떠한 정치인과 정
치그룹에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
자와 다른 존재들의 불편한 행동에 대해서 ‘분리’와
‘배제’를 명령하고 있다. 지금 통합진보당에게 가해
지는 것은 이와 같은 ‘혐오행동’ 또는 솎아내기와
무엇이 다른가. 통합진보당에 가해지는 뭇매가 서로
생각이 다른 동료 학생을 국정원에 신고하는 현실
02 인권이슈
7. 7
에 이르게 했다. 아닌가? 강단에서 선생이 사상을
의심받고 있다. 국정원이 언론에 조금씩 흘리며 매
타작을 준비하는 교사집단, 공무원집단, 또 다른 국
회의원의 정치적 형벌은 혐오의 확대와 동시에 이
뤄지고 있다. 그렇게 혐오의 방식은 공포와 뒤섞여
덩치를 불리고 있다.
정치를 하는 국정원보다 위험한 세력은 없음을 경
고한다. 그리고 이에 덩실덩실 춤추는 정부여당의
웃는 낯에 침을 뱉는다. 매카시즘의 전조에 영혼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민주당과 야당들의 무능력과 기
회주의를 규탄한다. 언론의 가치를 저버리고 마녀사
냥에 앞장선 언론의 퇴장을 명령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 목전에 닥친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의 심
각한 위험에 통탄한다.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릴 때이다. 오히려 유보된 정치사상과 양심의 자
유에 대해 무한한 토론을 하고 가치의 소중함을 되
찾아야 한다. 야만적이고 비루한 현실에 치이고 밟
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이다. 밀양
에서, 강정에서, 대한문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울부
짖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내란의 계절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사회에서 내란을 꿈꿀 자유
와 말할 자유는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며 정당
한 것이다. 그리고 시끄럽고 소란하고 불편한 길이
민주주의의 길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유의 영토이다. 그래서 지금, 우
리는 종북 빨갱이를 묻는 위험한 사회의 정수리에
돌을 던진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대한문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내란의 계절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사회에서
내란을 꿈꿀 자유와 말할 자유는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며 정당한 것이다.“
8. 8
노동자의 천국,
레이버랜드를 꿈꾸며
인터뷰어 훈이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2011년 7월 삼성계열사인 에버랜드에서 삼성노조가
만들어진지 2년이 지났습니다. 거대 기업 삼성에 맞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투쟁
하는 삼성노조의 박원우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다산: 자기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원우: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전국금속노조의
경기지부 삼성지회의 지회장 박원우입니다.
다산: 2011년 설립 당시 노조원은 몇 명 이었나요?
박원우: 4명으로 시작했죠. 그 당시 같은 사업부에
있던 동지들이었고, 지금은 노조간부가 되어 있죠.
다산: 설립 이후 2년이 흘렀다고 하셨는데, 그 동안
삼성노조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박원우: 설립 이후 에버랜드의 다른 사업부나 삼성
의 다른 계열사에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
동자를 찾아가서 고충을 듣고, 노조의 필요성이나
또는 삼성노조 설립과정에 대해 서로 공감할 수 있
는 시간을 가져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노조활동에
서 핵심사업이 조직화 사업인데, 만족스럽지는 않지
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활동해 왔고, 회사가 무노조 경영 방침에 대
해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고 느껴져
요. 그래서 이제는 삼성에서도 무노조 경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만들어
졌듯이, 그 동안 저희 삼성노조 설립이 하나의 밀알
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계
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03 떴다! 벗바리
9. 9
다산: 초거대 기업이고, 또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하던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
을 것 같은데, 그러한 점에 대해서 말씀 해 주세요.
박원우: 노조를 만들기 전에, 회사에서 표현의 자유
가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실 회
사는 제가 전에 한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가 없
다’고 말한 것을 징계사유에 포함시키기도 했습니
다. 저뿐만 아니라 삼성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나
또 삼성에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들이나 국민들이
그 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 왔던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서 그러한 인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 비판
을 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표현을 할 수 있다
는 것이 삼성노조 설립의 하나의 의미이고요.
현재로서는 노조의 조직화사업에 집중해서 에버랜
드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삼성 계
열사에서도 노조가 설립되어, 삼성에서 관행적으로
해 온 불합리하고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고 개선해
야 될 것이고. 나아가 삼성이 투명한 기업이 되어
노사가 서로 상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산: 그럼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
었습니까? 회사생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박원우: 제가 1999년 초에 입사했으니까, 일한 지
는 만 14년이 되었고 15년차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입사 후 2001년까지 한 3년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일만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쉬는 날에도 회사에 나
가 일하는 경우도 많았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
자들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
요. 그런 노동자들의 땀과 열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에버랜드 그리고 삼성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고요. 테마파크라는 에버랜드에 조리사로 일
을 한다는 것이 처음 2-3년은 흥미도 많았고, 재미
도 있고, 동료들과의 유대관계도 좋았고, 그리고 즐
거웠어요.
그런데 2002년부터 내 자신의 업무 외의 부분에서
경영자들의 너무 관행적이고 수직적 명령체계라든
지, 주관적 인사고과라든지, 현장에서 근무시간과
노동 강도 등에 대해 하나하나 깨달아 가기 시작했
죠. 그 때 지금의 부지회장인 조장희 씨가 노사협의
회 위원이었어요. 그 협의회에 비판적 안건을 제안
하면서 잘못된 관행들이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이라
는 차원에서 개선되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그런 관행에 질렸
고 개선되기를 바랐는데. 저는 다른 사람이 못한다
면 나라도 그러한 관행에 대해 지적도 하고 비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 이후 지금의 동
지-노조원-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죠.
다산: 회사에서는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박원우: 협의회 위원이 여러 명-8 또는 9-이 있는
데, 조장희 위원 혼자 경영진을 상대로 싸웠죠. 저
는 위원이 아니라서 위원을 통해서 비판을 하고 안
건을 제안했었죠. 그러면서 제 업무도 열심히 해서
2007년까지 저는 인사고과에서 상위고과를 받았어
요. 그런데 그 이후 노조설립 움직임이 보이고 하니
까, 회사는 제 성향을 파악하고 문제사원으로 분류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인사고과에서도 하위를 주기
시작하더군요.
다산: 무노조 경영의 기업에서 노조설립을 하게 되
어 직장이나 개인 생활에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되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10. 10
박원우: 현재의 직장생활이라면, 제가 일하는 부서
에서 업무도 하면서, 동시에 노조활동도 하고 있어
요. 업무 외의 시간에 노조를 위해 짬을 많이 내려
고 해요. 개인생활이라면 에버랜드에 입사한 후, 다
른 부서에서 일하던 제 집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죠. 그 당시 하루에 평균 12시간 또
는 14시간 일을 하다 보니 밖에서 연애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사내커플 비율이 상대
적으로 높았죠. 결혼해서 지금은 아들과 딸이 있고
요. 노조활동을 하면서 가족에게 잘 해야 된다고 다
짐을 하면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소홀히 하는 면
이 있죠.
그래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짧지만, 나름대로 그
시간 내에서 가족에게 충실하려고 애를 많이 쓰죠.
아이들은 아빠가 노조에서 일한다는 것 정도는 알
고 있으니, 저에게 노조가 무엇인가 물어봐요. 아이
들이 노동자라는 의미는 아직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회사에서 일하는 삼촌들이나 이모들 위해서
에버랜드를 좋은 회사로 만들려고 일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죠. 아버지로서 정당한 일을 한다는 것과 없
이 살아도 떳떳하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산: 노조활동을 시작한 후, 직장에서 노동자들에
관한 걱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원우: 제가 근무해 왔던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현
장의 비조합원들을 볼 때,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집
과 회사를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생활을 해
요. 에버랜드 내에서 각 부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
에 자기 생활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입사 후 나중
에 회사를 떠났든지 또는 이직을 했든 분들이 왜
자신들이 그렇게 목매여서 직장생활을 했는가에 대
해 종종 후회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정식 신입사
원들이 정상적으로 들어와야 되는데, 잘 되지 않아
요. 그리고 비정규직을 필요할 때만 뽑고 하니, 노
동자 개인에게 노동 강도가 워낙 강해서 걱정이 많
이 되죠.
다산: 노조활동 이후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다
른 노조도 알게 되었을 텐데요.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요?
박원우: 회사에서 경제적 탄압, 회유, 징계 등의 일
들을 당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까 우리 조합원들보
다 더 힘들게 투쟁하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럼에
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떳떳하
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투쟁하시는 분들을 보면, 우
리는 아직 시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죠.
다산: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노조활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박원우: 아뇨, 전혀 생각 못했죠. 사실 우리가 어릴
때 꿈이라는 것을 가지잖아요―물론 바뀌기도 하지
만. 그런데 저는 한 20대 후반 정도 되니까, 큰 꿈
을 갖기 보다는 현실에서 좀 더 나은 생활 같은 작
은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예를 들면, 회사를 다니
더라도 가능하면 오래 다녀야겠다. 그랬는데 이렇게
바뀌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자신에 대해
서도 놀래요. 언젠가 저는 20대 이후 20 여년을 생
각 없이 살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까
지 이러한 삶을 살 것인가 고민을 했어요. 그 때 다
른 방식으로 살아보자는 도전의식이 저를 채찍질한
것 같아요. 그래서 노조활동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우리 삼성노조의 네 명의 노조원이 무노조 경영을
03 인권이슈
11. 11
하는 삼성을 한번 바꿔보자 하는 것이 꿈이 되었다
고나 할까요. 물론 제가 노조활동을 하고 있지만,
노조가 없어도 노동자가 탄압 받지 않고 그들의 권
익이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굳이 노조가 필요하지 않
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잖아요.
다산: 앞으로 삼성노조 활동이나 개인의 생활에서
다짐이나 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원우: 단순한 꿈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에 노조활
동을 하면서 회사에서 노동자를 위한 제대로 된 노
조를 만들고요, 가정에 충실하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아버지가 되는 그런
소박한 꿈이죠.
다산: 마지막으로 다산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박원우: 다산과 저희 삼성노조가 인연이 많은 것 같
아요. 다산이 아니었으면 삼성노조가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어려움과 곤란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어요. 다산이 저희 노조를 물심양면 도와주고, 다산
활동가들이 자신의 일 인양 활동해 주듯이, 앞으로
도 계속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활동해 주
기를 바랍니다. 삼성노조가 지금은 많이 빈약하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삼성에 민주노조가 정
착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리고 삼성의 모든 계열
사에도 노조의 깃발들이 휘날리도록 만들어야겠죠.
다산: 감사합니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대한문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하는,
진정한 내란의 계절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의 사회에서
내란을 꿈꿀 자유와 말할 자유는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며 정당한 것이다.“
12. 12
혹시
행궁청년회를
아시나요?인터뷰어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남창동에 이사온지도 벌써 7개월여가 흐르고 있습니다.
다산은 몸살에서 그 동안 남창동(행궁동) 인근의 주민들
을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행궁 청년회 공동대표 박호철씨를 만나 행궁
청년회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호철씨는 다산 벗바리
이기도 하십니다. 이런저런 마을일을 하시면서 많은 보
람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신다는 호철씨. 과연 행궁청년
회가 어떤 곳이길래 그런 즐거움을 주는지 호철씨의 이
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다산: 주변에서 행궁 청년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요. 행궁 청년회 소개 좀 해주세요^^
박호철:사람들이 행궁동 청년회라고 많이 이야기 하
시는데, 정식 명칭은 행궁 청년회 입니다. 행궁 안
에서 마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이죠. 행
궁 근처의 마을에 살거나,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죠. 행궁동으로 한정해 놓으
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없으니까, 행궁 청년
회라고 이름을 붙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지금은 활동하는 사람이 한 22명
쯤 됩니다.
다산: 그럼 행궁 청년회에서는 주로 어떠한 일을 하
세요?
박호철: 마을에 어떤 큰 이슈나 사안이 생겼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들을 해
요. 기존에는 마을 원로들이나 추진위 세력들이 하
04 기획- 남창동에 살다
13. 13
는 것이 이제는 30, 40대의 젊은 친구들이 목소리
를 내서 마을을 젊게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신
풍초등학교가 없어지거든요. 아이들에게 어떠한 교
육을 해야 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까 부
터 시작해서, 최근 생태교통 페스티벌 준비하면서
벌어진 여러 인권침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요. 생
태교통 할때 공사를 진행하면서 그 안에서 보행권,
주거권등의 문제점 등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우
리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혼자 이야기 하면 투정처
럼 보이지만 여럿이 모여서 문제에 대해 합당한 것
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시청에 시정요구를 하기
도 해요. 현실적으로 마을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
해요.
하지만 이미 마을에는 기득권층이 형성되어 있죠.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 기득권을 놓기 싫어하고, 자
기말만 듣고 움직이길 원하죠. 이전에는 그래왔던
분위기를 어른, 아이, 젊은 층 할 것 없이 모두 동
등하고,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마을을 바꾸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물론 같이 놀러 다니
고, 술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으며 친목을
유지하고 있구요.
다산: 행궁 청년회는 어떻게 만들어 졌어요?
박호철: 작년 11월 초인가, 광원이 형이 행궁동 기
타반을 만들었어요. 제 짝궁이 거기에 기타를 배우
러 갔다가 인연이 닿았죠. 이런 모임을 확대시켜서
젊은이들이 모이는 모임을 한번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맨 처음 보리밥집에서 4명이
모여서 도원결의를 했죠. 임시총회를 갖고, 청년회
로 모여보자고 마을 청년들을 만나고 다녔어요. '우
리는 행궁 청년회 만들어서 모여서 놀꺼야'. 같이
하자 하면서 꼬셨죠. 또 우리는 마을에 사는데 시나
행정조직에서 마을을 바꾸는 것에 그냥 보고 있을
꺼야? 아니면 우리가 사는 마을 우리가 바꿔야 하
는거 아냐? 이런 이야기들로 사람들을 만났어요. 우
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줘야 하나에 대한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처음에는 같이 밥 먹고, 술마시고, 같이 놀고하면서
친목을 다졌죠. 이렇게 몰려다니다 보니 사람이 좋
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한 두명씩 사람들이 늘어나
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레의 성격이
되는거 같아요. 무슨 일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관
심갖고, 함께 하고.
다산: 행궁 청년회 모임은 어떻게 해요?
박호철: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정식 모임이예요.
그때 새로운 멤버도 들어와요. 뭐 승인은 없고, 분
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자동승인이죠. 초기 결
성했을 때보다 활성화가 많이 되었고, 분위기도 많
이 바뀌었어요.
다산: 행궁 청년회를 만들고 난 이후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박호철: 여기가 밤에 좀 다니기 무서운데, 아이들,
여성들이 밤에 다닐때 다 아는 사람들이다보니 자
연스럽게 서로 보호하게 도는 측면이 있어요. 아는
관계들이 많이 생기니까. 또 서로 재능있는 사람들
이 서로 재능도 나누고, 모임도 하다보니 재밌는 것
들도 많구요.
특히 청년회 멤버들 중 아이가 있는 집들이 있는
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고민들도 나누게 되
서 대안을 같이 고민하죠. 모두가 생활 밀접형이 된
거 같아요.
“여기 살면서 골목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더 큰 골목을 알게 되고,
그와 연결된 다른 골목을 알게 되고. 참 재밌었어요.
청년회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
마을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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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마을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호철씨 자신도 많
이 바뀌지 않았어요?
박호철: 청년회 하면서 내 삶도 많이 바뀐 것 같아
요. 2년 전에 친구 전시회 보러 행궁에 왔다가 이
동네에 반해버렸어요. 팔달산, 성곽, 수원천이 굉장
히 마음에 들었었죠. 그래서 4대문 안에 살아볼까란
호기심에 왔죠. 도심보다 많이 여유로운 동네 같아
요. 여기 살면서 골목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
과 인사하면서 더 큰 골목을 알게 되고, 그와 연결
된 다른 골목을 알게 되고. 참 재밌었어요. 청년회
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는 것, 마을이 조
금씩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참 좋아요.
공동체라고 하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참
재밌어요. 자기 욕심만 부리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공동체가 탄탄해지지 않을까 해요.
다산: 청년회가 의미있는 일을 동네에서 많이 하는
데, 다산도 함께 할 수 있는게 없을까요?
박호철: 다산이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특기를
살려서 주민인권교육도 같이하고. 작은 권리 찾기
등도 함께 하면 좋겠다. 공방거리에서 경적소리 없
애기 같은 작은 것들부터. 이런 것들을 함께 하면서
마을을 함께 바꿔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을 만나는 것,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나
누는 것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된 요즘 입
니다. 같이 나눈다는 것, 같이 산다는 것의 소소한 즐거
움들이 우리 일상에서 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다산
도 마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꺼리들을 찾아봐야겠
어요. 인권이 살아 숨쉬는 마을을 위해서요.^^
04 기획- 남창동에 살다
16. 16
2013년 9~10월
활동보고
05 활동보고
●민주주의를 위한 촛불은 계속됩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국정원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대선개입이 구체적으로 들어나면
서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국정원 해체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주말마다 서
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
책임’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정국은 지난 8월 28일부로 급격히 반전됩니다.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온 나라를 발
칵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28일 ‘내란음모혐의’를 두고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 등 1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습니
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대선개입을 자행한 국정원의 해체 아니 최소한의 개혁을 바랐던 시민들의 목소리
는 ‘내란음모’라는 어처구니없는 국정원의 주장에 설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에 일부 보수언론은 정체불명의 소
위 ‘RO모임 녹취록’을 보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국정원이 회심의 카드(?)를 던진 것입니다. 결국 지
난 9월 26일 검찰은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국정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줍니다.
이 사건은 통합진보당 일부 인사들에 대한 흔히 있는 수사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인권단체들은 9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모든 이들에게 종북이라는 빨간 딱지가 붙고, 자신의 생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위
한 사상과 생각, 양심의 자유는 위협받는다”며 “지금 우리사회를 휩쓰는 마녀사냥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어 “공포와 혐오행동은 한 묶음”이라며 “당장 비밀정보기관의 음모를 저
지하지 않으면 우리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은 사라질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 수원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표명을 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9월 16일
경기,수원지역의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내란음모 사건이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종북’, ‘빨
갱이’를 확인하는 신매카시즘이 불고 있다”면서 “북한을 추종하거나 내란을 음모하는 것보다 다양한 생각과 상상마
저 허용되지 않는 지금의 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를 매카시즘과 마녀사
냥에 휩싸였던 1950년대 미국으로 만들었다”며 “지금 우리는 내란음모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모든 이들이 ‘북한’과 ‘이석기’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길 두려워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
다”고 발표했습니다.
사건 이후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수면아래로 내려간 듯 보입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원의 행위
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촛불 역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원지역은 매주 수요일 5년
동안 지켜온 촛불이 수원역 광장에서 아직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과 민주수호를 위한 수원지
역 시국회의>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수원역 광장에서 만나는 것, 이제는 일상이 되
었습니다. 수요일, 시간되실 때 수원역 광장으로 마실 한번 나와 보시는 게 어떨까요?
17. 17
●삼성을 말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연관된 삼성 X파일 수사 내용이 연일 회자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비리에 연루된 채 삼성 장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는 부도덕한 모습은 삼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
다. ‘삼성이니까..’ , ‘삼성이 없으면 한국이 망한다’는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삼성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만듭
니다. 삼성 휴대폰을 쓰고,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 모습. 비리로 얼룩진 삼성을 바꾸려는 시도 보다는
그 안에 순응하며 살아가기 위한,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삼성이 영업 이익 10조원을 넘어섰다는 이야기,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 우리 안에 1등으로 기억되는 삼성, 최대의
이윤과 부를 창출하는 삼성. 하지만 뒷 모습은 여전히 비리와 통제로 얼룩진 채, 그 어두운 그림자만 키워가고 있습
니다. 삼성이 창출하는 어마어마 한 부, 그의 이면에 죽어간 노동자들. 삼성이 거대기업으로 살아남는 한 그 빛과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8일, 뜻깊은 자리가 열렸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그 안
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삼성에서 ‘을’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리였습니다. 바로
[삼성 ‘을’ 말한다.] 워크샵. 올해 12월 (가칭)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출범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우리가 삼성에 맞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 많은 직업병 피해자를 낳고 있는 삼성에 맞서고 있는 반올림, 삼성 최초로 노조를 설립한 금속노조 삼성지회,
삼성서비스 노동조합 등 삼성에서 ‘을’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삼성을 상대로 싸우고 있음의 어려움, 삼성에
서 ‘을’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핍박과 아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울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보아왔던
세계 일류기업, 사회공헌기업 삼성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엄연히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공정이라
우기며, 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했던 삼성, 노동조합을 만드려는 노동자들을 미행하며, 협박하는 삼성의 모습들, 점
심 먹을 시간도 없고, 관리자의 폭언을 들으며 살아왔던 삼성 서비스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아
프게 했습니다. 삼성은 국내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서의 소송이,
중국에서의 아동노동 착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사례는 이미 한국에서 시작된 무노조 경영과 노동자 탄압이 세계
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곳,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곳이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밤 늦게까지 진행된 워크샵을 통해 참가자들은 무노조 방침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그
것을 이야기 할 때만 바뀐다는 것, 앞으로 출범할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공감했습니
다.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삼성으로, 노동자들을 존중하고, 그 고마움을 아는 기업으로 삼성으로 바뀔 수 있도
록^^ 앞으로 출범할 (가칭) 삼성노동인권지킴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