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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행복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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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총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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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행복 좌담회

  1. 1. 특별 좌담회 과학기술의 행복과 가치 일 자 : 2015년 10월 15일 좌 장 : 송하중 |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참 석 : 곽금주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박남규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공학부장 이언오 | 바른경영연구소 소장 임진혁 | 울산과학기술원 경영학부 교수 차두원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창조경제전략센터 연구위원
  2. 2. 60_ THE SCIENCE & TECHNOLOGY 좌장 송하중 오늘 월간 <과학과 기술> 특집 좌담회는 ‘과학기술의 행복과 가치’를 주제 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진혁 영국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대니얼 튜터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 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한국을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으되 행복하지 않 는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이루기 전이자 한국 경제 개발이 시작된 1962년 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당시 경제개발의 첫걸음이 된 울산 공업센터 기공식의 축사는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 지난 10월 15일 과총 회의실에서 ‘과학기술의 행복과 가치’를 주제로 이번호 특집 좌담 회가 진행되었다. 과학기술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이며,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행복하 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는 과학기술 발전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화두이 다. 이날 토론회는 과학기술 자체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다음은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과학기술의 행복과 가치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3. 3. 과학과 기술 2015.11 _61 여’라고 시작됩니다. 이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2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 다. 즉 공장에서 나오는 소리가 동해 바다를 진동하게 하고,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 을 덮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로 경제력으로는 세계 10위권 그리고 삶의 질로는 29위의 국가가 되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주관적인 행복지수에서 는 아직도 내전을 겪고 있는 이라크보다 낮고 팔레스타인 등과 함께 공동 118위로 최하위 수준입니다. 즉 성공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지수와 행복을 측정하는 주관적 지수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공을 추구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위한 것인데, 성공의 날개는 커진 반면 행복의 날개는 오히려 추락하고 있는 불균형의 문 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런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만 유난히 한 날개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앞 으로도 이 밸런스가 맞춰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문제 앞에서 과연 ‘과학이 어떤 역할 을 해줄 수 있을까?’가 화두인 것입니다. 이언오 우선 자료를 보면 빅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우리가 매우 불행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행복은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문제라고 봅니다. 너무 비관적으 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미디어가 부정적인 것만 부각해 실제 더 행복하면 서도 극단적으로 우리가 불행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과학기술계가 행복 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이 행복이며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무엇인 지 말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가 어느 정도 달성하고 행복이 이 슈가 되면서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라고 하니 이런 결론이 난 건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적 으로 너무 비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지만, 내전으로 목 숨이 위태로운 이슬람 국가들에 비하면 행복하지 않습니까. 임진혁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라크보다 우리의 행복지수가 떨어집니다. 이언오 그러니까 그런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사 결과는 낮지만 객관적으 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라보다도 못하다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조금 더 조사를 더하고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곽금주 행복이 결국은 주관적이므로 조사 역시 주관적인 행복 감정을 물어봅니다. 그 런데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잘 알 수 있지만 집 단주의 문화에서는 이를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중국이라든지 동아시아가 어느 정 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보다는 남하고 견주어 판단하고, 그래서 똑같은 척도 설문지에서 점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즉 부연하자면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행복지수가 더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4. 4. 62_ THE SCIENCE & TECHNOLOGY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점수가 지나치게 낮다는 거죠. 예컨대 기대 수명, 문자 읽기, 교 육의 기회 등 객관적인 행복은 UN 조사 결과 우리나라가 137개국 중 15위로 굉장히 높습 니다. 그런데 주관적인 행복은 갤럽 조사 결과 118위로 최하위권입니다. 내가 얼마나 즐 겁고 존중받고 있느냐는 것에서 우리는 꼴찌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안의 인간은 생각하 지 못하고 지나치게 객관적인 행복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두원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듯이 행복에도 상대적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나 과학기술 정책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입니 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도 충돌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닉슨 행정부 시절 1971년 미국의회는 국가 종양법(National Cancer Act)을 통과시켜 암정복을 선언했고, AIDS에 이어 2012년에는 2025년까지 알츠하이머 질환 정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분명히 과학기술이 인간의 건강증진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기대수명이 늘어나 는 게 과연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스위스로 안락사를 위한 여행을 떠나 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우리나라도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격차가 점점 커지 면서 노인층의 의료비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정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필수로 과학과 의학 등의 혜택을 골고루 받기 위해서는 적정한 국가사회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필요적으로 발생하는 ‘격차 (divide)’는 여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는 ‘로보틱스 디바이드(Robotics Divide)’라는 이야기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산업혁명기에는 면화, 최근에는 정보 등의 소유에 따라 개인, 사회, 국가가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었다면 앞으로는 이 러한 격차들이 로봇의 기술력과 보유 여부에 따라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노인들 케어를 위한 로봇들이 전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고, 로봇들이 생산현장뿐만 아니라 금 융, 의료 등 전문직 영역으로도 점점 확산되어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있는데요. 가진 자와 못가진자,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에 대한 문제가 보다 첨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박남규 도입부이다 보니 문제제기 쪽에 관심이 갑니다. 과학기술이 사람에게 행복할 기 회를 주지만 그것이 100% 등식으로 성립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높아 진 과학기술에 비해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회관계망 또는 인문학적 삶의 자세 등 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부터 입시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무엇이 행복한지조차 알 겨를도 없이 남들보다 잘 나가야 되고, 더 좋은 대학에 가야 되고, 돈 더 많이 벌어야 되 고, 그런 것만 쫓다가 성인이 되어 ‘행복이 뭐지?’ 하고 되돌아보면 정작 내가 원했던 행복 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이런 갭이 왜 나오는지부터 성찰 되어야 과학기술 발전이 과연 어떻게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지 해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5. 5. 과학과 기술 2015.11 _63 좌장 송하중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은 행복 자체보다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한 축 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봅니다. 과학기술이 자체로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 동이라기보다는 그걸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잘 먹고 잘 사는 한 매커니즘으로 과학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과학기술이 행복에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문학에서는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의 축뿐 아니라 과학 고유의 학문적 호기심 충족과 그 탐구에 대한 기반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과거에 무엇이든 먹고 살 만한 것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지, 그걸 즐겁게 탐 구한다는 것은 아예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 세대의 경우 바꾸라고 해도 못 바꾸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역할은 다음 세대가 쓸데없는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자기들이 주어 진 그대로 즐기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비유하자면 지금은 야구 의 9회 말 같은 시기인데, 우리가 남은 20~30년 동안 마무리를 제대로 해서 게임을 이기 게 해놓고 다음 게임을 할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얘기를 과학 기술의 행복과 가치에 초점을 맞춰, 과학기술이 지구촌의 행복 그리고 우리 국가와 공동 체의 행복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박남규 과학기술이 행복에 관련되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을 정의할 때 과학기술이 차지 하는 바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봅니다. 임 교수님께서 조사하신 발췌문을 보면 행복을 느 끼느냐는 문제와 과학기술에 의한 행복을 느끼느냐는 문제는 또 다를 겁니다. 그런데 행 복은 굉장히 복합적인 정서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불행하다를 타인의 판단이나 기준으로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과연 과학기술에서 행복의 가치를 논하자면, 과학기술 수준 이 충분히 올라와 행복의 기회를 주고 있지만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연계성이 좀 부족했 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쪽으로만 열심히 달려왔 기 때문에 이제 우리 국민과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야 될 때가 되 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제가 업무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법과학 (Forensic science) 분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과학수사’는 범인을 잡는데 기술 의 바탕으로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때 이 과학을 용도에 맞게 체계화한 것 이 법과학입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 한 신뢰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사람은 27%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더욱이 2013년도 <한겨레 21> 잡지에서 법원 판결을 신뢰 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17.2%가 그렇다고 하는, 거의 신뢰할 수 없 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억울하게 형사처분 을 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80%를 넘었습니다. 과연 이런
  6. 6. 64_ THE SCIENCE & TECHNOLOGY 데서 국민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과학과 관계없이 법적 적용을 해서 우리 사회의 신뢰가 무너진 경우들을 보면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 편리한 세상이 와도 다른 한쪽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 린 법과학이라는 것은 재판 과학이라고도 하는데, 재판이나 공판 과정에서 과학적 기능이 더 높아진다면 이러한 불신이나 불행을 가져다주는 결과도 낮아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법 정에서 쓰이는 과학은 선진국에 비해 그 활용도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만큼 높지가 않습니다. 다른 과학의 발달된 수준만큼 법정이나 사회에 과학화가 하루 빨리 이 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이 과학기술이 행복지수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요인이 아 닐까 생각합니다. 이언오 저는 과학기술이 행복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문제는 과학기 술계가 그냥 과학기술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옛 날 원자 폭탄을 이야기할 때 인류를 살상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연구를 못하겠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기술이 정책과 교육 등 전 분야와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 과학을 예로 들면 이미 기술이 준비되어 있음에 도 기존 법학계의 성벽이 견고한 부분이 있고, 과학기술자가 법을 몰라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법학을 연구하는 분이 과학기술을 배우기는 어렵지만, 과학기술을 연구하 는 사람들이 깊이는 아니더라도 법을 조금만 공부하면 적용이 훨씬 더 빠를 거라고 봅니 다. 문제 고리를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방향으로 고려해 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차두원 분명히 과학기술이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국민들 은 과학기술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1960년대부 터 너무 빠르게 진행된 발전이 경제발전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국민들이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중세부터 과학기술이 발전하던 유럽과 미국, 19세기 메이지유신부터 과학기술을 중시하며 발전했던 일본 등은 오랜 시간 과학기술 철 학,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자도 연구개발에 바쁜 만큼 일반 국민들도 과학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위한 여력이 없었 고 무엇보다 과학자들과 국민 간에 서로 이해하고 의견을 반영할 만한 커뮤니케이션이 원 활하지 못했던 거죠. 그리고 과학기술이 주는 행복이 작은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메이커 무브먼트(Maker Movement)가 확산되고 있습니 다. 관심이 있어 국내외 메이커페어를 관람했는데요.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모여 자 신이 과학기술을 활용해 직접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서로 네트워크도 만들고 소통 하는 행사입니다. 메이커 페어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수준이 높든 낮든 자신이 만든 작품 들을 데모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일반인들에게 설명하면서 행복해하는 메이커들의 모습들 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과학기술로 일반인들이 소통하고 개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7. 7. 과학과 기술 2015.11 _65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규모는 작지만 메이커 무브먼트가 확 산되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과학을 통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면 과학기술이 앞으로 더 커다란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역할, 과 학기술계의 역할은 이런 사회적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의무가 아닐까요? 이언오 지금 말씀하신 것이 굉장히 와 닿습니다. 진리를 추구한다든가 새로운 걸 발견 하는 등 과학기술 자체가 주는 행복 말입니다. 입시교육이다 뭐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이 야기했지만, 잘 살게 하고, 국가 안보를 지키고, 수명을 늘리는 것과 같이 과학기술 자체 의 즐거움도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의 수단 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고도성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자 괴감이 불행 쪽에 반영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성장률이 높아질 가능 이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여유와 조화 등으로 과 학기술의 역할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곽금주 좀전 말씀의 요약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은 너무나 급격하게 압축 성장을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덕분에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뤄서 물질주의 사회를 만들어 주었 습니다. 제가 건국 70주년을 짚어보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를 ‘분노의 70년’이라고 표현했 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 그리고 1970년대까지는 생존 분노였습니다. 무조건 살아남 아야 했던 시기였죠. 그 다음에 경제 발전이 시작됐는데, 그건 발전 분노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왜 이렇게 못사느냐, 이 가난을 자식한테 주지 말자. 그래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듯이 분노라는 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굉장히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 힘이 우리나라를 발전시켰고 과학기술 분야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장이 멈췄습니다. 성 장 발전할 때에는 모든 직업이 다 좋았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갔다는 것입니다. 대신 물 질은 엄청 많아졌고요. 그래서 나온 것이 비교 분노입니다. 늘 옆 사람과 비교하지요. 더 구나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이기에 비교는 자연스럽고 항상 비교하다 보면 모든 게 불 공평해 보입니다. 힘 있는 사람, 재력있는 사람은 저절로 잘되고, 우리는 이제 어쩔 수 없 다는 자조가 비교 분노로 사용되면서 폭력도 난무하고, 자살도 늘고 여기에서 행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겁니다. 사실 저는 행복이라는 용어를 싫어합니다. 행복이 라는 용어 대신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좋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이 분노의 에너지를 상대방하고 비교하지 말고 자기화해서 나의 충만으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압축 성장과 성과 위주에 물들어 안전사고도 많고 부 실한 부분도 많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지나친 성과 위주의 분위기 때문에 부정과 부패가 난무하고 행복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지 못했는데, 이제 사회 분위기는 물론 교육 과 과학이 자기 개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자꾸 개발하면서 자기 안 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성찰, 자기내부로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8. 8. 66_ THE SCIENCE & TECHNOLOGY 남과 비교하는데 에너지를 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충만, 정신적 행복을 위해 에너지를 써 야 하는 거지요. 임진혁 예전에 저희가 자랄 때 ‘사회와 가정이 성공하면 행복하다’, ‘좋은 대학 들어가 고 좋은 곳에 취직하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목표 위주의 행복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 떤 목표를 달성했을 때 기쁘긴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성공 후의 행복을 위해 인내를 강요받았지만 이제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시대 에 살고 있습니다. 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고생과 인내를 강요하기보다는 행복의 의미를 심어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행복을 위해서는 ‘베터 라이프(Better Life)’ 즉 삶의 질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 행복은 개인이 느끼 는 것이지만 국가가 해줘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많은 갈등 구조가 사회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언오 제가 얼마 전에 세종시에 갔는데 큰 건물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 다. 임금 피크제 반대. 좋은 건물 지어놓고 국책 연구기관 수십 개가 들어서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문구가 ‘임금 피크제 반대’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과학기술계가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는 능력, 자체 정화부터 포함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정부에 대 해 제안하는 것을 너무 못하니까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냥 시키는 대로 과제만 열심히 한다거나 예산을 많이 딴다거나 너무 수단적인 그 런 것들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추상적이지만 같이 고민하 는 작업이 이제는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임진혁 얼마 전 통계를 보면 한국 과학자 중 미국에 이민 갈 수 있으면 가겠다고 응답 한 사람이 60%가 넘었습니다. 반면 미국에 있는 재미 과학자들은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 만 있으면 가겠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인데, 과학 하는 분들도 스스로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도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합니다. 그러 다가 저녁 먹으러 나가서 한 젊은 부교수를 만났더니, ‘아, 교수님 죽겠습니다’ 하는 거예 요. 저는 10시까지 기쁜 마음으로 하거든요. 같이 10시까지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하는 사 람하고, 죽겠다고 하는 사람하고 다르잖아요. 과학자가 행복해야 합니다. 좌장 송하중 과학기술자들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것인가도 우리가 얘기할 중 요한 이슈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이과 공부하는 사람이 절반쯤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공부하는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9. 9. 과학과 기술 2015.11 _67 것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으로 초점을 맞추면 과학기술자 들 스스로 우리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부터 시작해볼 까요. 과학기술자 스스로 어떤 호기심을 느껴 결과를 찾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도 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부터 말씀해 주시죠. 박남규 일본의 노벨상만 봐도 벌써 확연합니다. 우리나라는 평화상 외에는 과학기술 관련 분야 노벨상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이게 같은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호기심 이나 과학적 문제 해결에 대해 희열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노벨상도 멀지 않았다 는 견해들이 많은데 과연 그런 토양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느냐, 거기에는 아마 동의하 기 어려운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기초과학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결과만 바라지 말고 꾸 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말하지만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제반 시스템에서는 항상 먹 고사는 문제, 정치권에서는 여야 너나 할 것 없이 계속 경제 얘기뿐입니다. 오로지 경제가 화두가 되어야 국민들에게 통하는 사회, 저는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과연 경제 자체가 우 리 삶의 최종 목적인지 이에 대해 좀 더 사회적으로 풀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습니 다. 그래서 별보는 사람이 밤마다 왜 행복해하는지, 로봇 가지고 한 단계 더 만들 때 그것 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편리를 주는지, 이런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예전 구호처럼 ‘생활의 과학화’가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논제로 갈등 을 유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도 하나의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과학적 마인드가 들어 가야만 사회 통합도 좀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과학적 통합에 과학이 가장 기본이라는 것 이 누구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적어도 관계 구성원이 모두 인정하는)이 되어야 하 지 않겠습니까? 과학은 그 의제가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제3자 증명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은 싸움의 도구일 뿐 어느 누가 과학적 방법론 에 의해 객관적 판정을 하는 역할이 어느 때부터인가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런 부분까지 우리 생활 속에서 과학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언오 결국 권위나 존중, 자긍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과학기술 이 사회에 유용한 분야로서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것이 경제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문화적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게 아마 박남규 교수님이 말씀하신 압축 성장의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미국식 경쟁 위주에 사회주의식 계급주 의와 같은 평등주의도 있고 또 조선시대의 공동체주의 같은 것이 섞여 있으면서 조화되기 보다는 부작용만 큰 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 정치는 계급 갈등구조 쪽으로 가 있고 나머지는 지역 시골 같은 경우 공동체와 가족주의가 심하고요. 과학기술계의 경우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연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하면 좋 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해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제도에 반영하고 일종의 사회 원칙으
  10. 10. 68_ THE SCIENCE & TECHNOLOGY 로 정립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너무 기능 주위인 탓에 근본에 대한 과학 기술계의 역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차두원 노벨상 이야기가 나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수의 노벨 수상 자들의 인터뷰들을 보면 모두들 똑같이 ‘수상 비결은 스스로 주제를 발굴해 연구할 수 있 는 환경’이 가장 중요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정부 지원 시스템도 수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노벨과학상 50% 이상을 수상하는 미국을 살펴보면 민간재단의 영향력이 정부보다 오히려 역할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의 하워 드휴즈의학연구소(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인베스티 게이터 프로그램(Investigator Program)을 통해 다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었 는데 20년, 30년 이상 연구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다수입니다. 미국의 경우 정부의 연구 지원 환경도 우수하지만, 어쨌든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지원의 한계를 넘어 민간이 오히 려 정부보다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일본 TBS 방송에 서 노벨과학상 관련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소 낯선 인터뷰 요청이라 이유 를 물었더니, 일본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면 할수록 왜 한국 언론과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이 비례해서 높아지는 지가 궁금하다는 겁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PD가 하 는 말이 자신을 포함한 일본 국민 대다수가 이제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언제 나오는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담당 프로듀서가 나름 취재를 통해 판단한 한국 의 문제점은 입시 중심의 교육, 연구 자율성 문제, 단기성과 주의라고 말하는데 조금은 창 피했습니다. 외국에서 지적할 정도고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있다는데 매우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산업 발 전과 빠른 성장의 궤적을 맞춰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연연이나 대학 모두 똑같이 압축 성장의 부작용에 시달립니다. 정권 교체에 따른 단기성과 중심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도 문제고,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와의 상호작용도 중요한데, 모든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실행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아쉬울 뿐입니다. 곽금주 과학자의 행복도 성과 위주 때문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종종 학 생들에게 ‘Job’, 직업과 ‘Work’ 일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Job’을 찾으려면 재미가 없어지 니 내가 정말 즐길 수 있는 ‘Work’를 찾고 그것이 ‘Job’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노벨 상 역시 우리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역량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OECD 국가 어린이 대상 으로 최근 ‘피사’라는 활동을 하면 우리나라가 일등입니다. 그런데 수학과 과학 흥미를 측 정하면 꼴찌입니다. 능력은 되는데 흥미가 안 따르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육도 잘 못되었지만 결과 중심인가 과정 중심인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심리검사를 보면 두 경 우 모두 성공할 땐 다 좋습니다. 문제는 실패했을 때입니다. 결과 중심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더 이상 노력하지 않습니다. 포기해버리고 더 쉬운 것을 찾아가지요. 반면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11. 11. 과학과 기술 2015.11 _69 과정 중심인 경우는 실패했을 때 고민하면서 문제점을 찾고 노력하고 전략을 짜고 공부 시간을 늘립니다. 실패했음에도 다시 노력하면서 시도하게 되는거지요. 결과 중심의 아이 는 자기가 못하는 수학 시험문제는 백지를 내고 포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하는 국어만 하는거죠. 제가 실시한 실험입니다.(다큐 프로그램 방송으로 여러번 나갔습니다) 아이들에게 퍼즐 실험을 했습니다. 1번 퍼즐은 조각들이 커서 빨리빨리 맞추게 되는 반 면 2번 퍼즐은 조각들이 작고 조각 몇 개를 빼버려서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끙 끙거리면서 2번 퍼즐을 맞추는데, 시간이 되어서 그만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있는데 1번과 2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지요. 그러면 결과 중심인 아이는 전부 1 번을 선택합니다. 이유는 맞춘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반면 과정 중심인 아이는 2번을 선택하고요. 이유는 다시 해보면 이번엔 맞출 수 있기 때문이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1번은 이미 맞춘 것인데 뭐하러 다시 하느냐는 답입니다. 결국 과정 중심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학도 결과 중심으로 가면 그 즉시 그때그때 프로덕트(결과)가 나옵 니다. 그러나 오래동안 공을 들여서 이룰 수 있는 굉장한 결과는 낼 수 없는 거지요. 결과 내는 것만 급급하게 되는거지요. 대학에 진학해서도 쉬운 과목만 듣고 취업해서도 성과 내서 승진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인생에서 이룬 것을 돌아보면서 결국은 물질 의 기쁨 외에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 중심을 어떻게 만드느 냐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친한 외국인 노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 분이 일흔 살 다 되 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제가 그거 배워 뭘 하느냐, 손가락 굳어서 안 된다 말렸 는데도 기어이 해보겠다는 겁니다. 또 여든 살이 가까워서는 발레를 배우러 다니는 겁니 다. 제가 뚱뚱한 할아버지가 발레가 되겠느냐고, 이제 배워서 뭐하겠느냐고 했더니, 오히 려 그 분이 제게 답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는 항상 그걸 배워서 무얼 하려고 하느 냐, 그 결과가 무어냐 라는 것만을 말하는데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걸 배워서 무 얼 하려는게 아니고 배우는 그 과정이 난 너무나 좋다.” 바로 그것입니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고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고 좋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과정 중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학기술은 정말 지속적으로 투 자가 되어야 과학자들이 과정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좌장 송하중 장관과 국장은 오고가지만 KISTEP은 영원합니다. 과학기술은 지속성이 중요한데, 과학관련 정책 및 행정체제는 정권에 따라 추진 스타일이 바뀌고 담당자는 1~2년 안에 나름대로 특징을 잡으려고 합니다. 즉 실패가 됐든 성공이 됐든 꾸준하게 한 방향으로 열심히 해보는 분위기가 아니라 내가 있는 동안 성과를 내야 되는 겁니다. 그러 다 보니 곽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결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결과가 없으면 실패자로 여겨지고, 그러면 다음에 다시 자리를 얻지 못하고, 결국 쉬운 1번 문제만 해야 됩니다. 과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도 1번 문제를 가지고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12. 12. 70_ THE SCIENCE & TECHNOLOGY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아이들 성향이 어떻게 그 두 스타일로 나 뉩니까? 타고나는 것인지 짧은 기간 학습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인지요? 곽금주 타고난 것도 있고 어떻게 키웠느냐 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낙관성입니다. 낙관성은 타고나는 겁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처음 배울 때 굴러 넘어지고 무릎 깨지고 해도 일어납니다. 그게 낙관성입니다. 그건 원래 본성적으로 태어나는데 살아가면서 점점 없어지게 됩니다. 어떤 한 모델이라도 우리가 이렇게 투자해서 노벨상을 받았다 하는 사람이 나오면, 우리나라에 서는 엄청나게 나올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물고를 어떻게 트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고 과정을 즐기다가 마침내 성공한 스타를 한 번 정도는 가져볼 때가 되 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예산도 다 쪼개먹고 나눠먹는 상황인데, 우리의 사고를 바꿔 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언오 발명의 날은 세종대왕이 측우기를 보급한 5월 19일입니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측우기가 무슨 기술이냐? 물 받는 것 아닌가” 하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강수량을 측정해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짓게 만들겠다는 것. 그러니까 과학기술의 행복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호기심과 즐거움도 있지만 큰 맥락에서 인류의 발 전이나 사회의 기여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엔 과학의 기본적 목적과 가치가 존중 받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언급된 결과와 과정, 모두가 중요하 다고 봅니다. 대신 결과가 무엇을 위한 결과인지가 중요하지요.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하
  13. 13. 과학과 기술 2015.11 _71 기 위한 신약 개발, 이런 결과 중심은 아무리 추구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 리 사회의 문제는 추구하는 결과가 너무 단편적이고, 이기적이고, 수치 위주라는 것입니 다. 과정 역시 정부 주도라 그런지 옛날식 권위주의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Bottom Up’과 ‘Top Down’이 조화를 이뤄 제3의 패러다임이 나오기는커녕, 여전히 한쪽 은 권위주의고 한쪽은 불만 세력만 있으니 문제입니다. 결과와 과정을 조금 더 보완해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남규 행복의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 너무 늦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젊은 이들이 과학의 가치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단 적인 예로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식사하고 출근하는 것이 행복인 줄을 당 시에는 모릅니다. 불행해졌을 때 비로소 그때가 행복했구나, 느끼는 것이죠. 그것을 평상 시 나의 주관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행복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내재된 행복을 재단하는 데도 주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사회관계나 교육 같은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일찍 알아가는 것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좌장 송하중 제가 덧붙이고 싶은 건 실제로 좋은 상황에 있을 때 그게 왜 얼마나 좋은지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받거나 사회 분위기를 만들게 되면 우리가 스스로를 각박하게 보 는 데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박남규 과학기술에 대한 만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때는 테이프로 노래를 들었지 만 지금은 USB나 음악파일, 음원 가지고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 학기술이 주는 대단한 행복이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 해서도 가치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면 더 빨리 행복과 연결 지을 수 있고, 우리 사회 전 반적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주관이 넓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것이 남과의 비교 도 최소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직업’과 ‘직장’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남들이 다수가 최고라고 칭하는 대기업만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빨리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좌장 송하중 저는 미국에 있을 때 교수 한분과 한국 교육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이 뜨끈 뜨끈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가 과외하다 적발되면 아버지가 직장에서 처벌받던 80년 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는 학생들의 엄청난 학습 시간 등 우리 교육의 외형적 지표를
  14. 14. 72_ THE SCIENCE & TECHNOLOGY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성과를 내는 사회를 만든 것 자체 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교육을 통해서 배양되어야 할 다른 중요한 부분이 소 홀히 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던 것이지요. 교육이 그러한 부분을 키워 낼수 있습니까?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박남규 우리는 성공을 획일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 한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님들을 존경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지지하지만 제가 실행하지는 못했거든요. 그런 교육의 획일화와 성공의 획일화를 떠나 본인들이 다양성을 찾고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게 해주는 부모들이 계속 나타나야 재단된 일등 지상주의가 타 파되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곽금주 아까 성과 위주를 문제 제기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 경쟁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수위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령별로, 수준별로 성과, 경쟁, 자율성 등을 잘 조 절하는 다양한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미흡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한 아이가 월반하면 우리 엄마들은 왜 쟤는 가는데 너는 못가? 하고 난리가 납니다. 이런 것 은 말로만 바꿀 수 없습니다. 좌장 송하중 약간 방향이 다른 얘기지만 아까 말씀 드린 우리 세대가 마지막 할 일이 뭐 냐하면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이 틀을 바꾸는 분위기를 만들고, 액션을 취해야 합니다. 임진혁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일반론에 대해 얘기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 아가 지금 미국에서는 과학 쪽에서 행복 과학이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버클리 대학의 ‘science of happiness’ 라는 무크 과목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거기에선 ‘더 행복하기!’가 주요 메시지입니다. 즉 지금 행복보다 더 행복해지자는 것입니 다. 이제 한국에도 행복과학이라는 개념이 들어와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면 상당히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과 학적인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저는 매일 계단을 걷 습니다. 대개의 사람들 마음 속에는 승강기와 계단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자동모드가 작동 합니다. 전자는 편하게 올라 갈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이므로 두 번 다시 어느 쪽을 선택할 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려운데 이 같은 운동기 구를 나를 위해 특별히 설치해 주니 감사하다’는 심리적 프레임으로 바꾸어서 기쁜 맘으 로 걷습니다. 뇌과학자들이 발견한 뇌가소성(Neuro-plasticity)에 의하면 기존의 심리적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15. 15. 과학과 기술 2015.11 _73 프레임도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어제 교정을 산책하는 중에 보니 분무기가 잔 디밭에 물을 살포하는 방향으로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무지개는 항상 멀리 있는 줄만 알았는데, 단지 물을 뿌림으로써 가까이에 있는 빛 속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행복 을 일상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곽금주 그런데 교수님이 무지개를 보라고 알려준 학생은 우리 교수님이 왜 저러실까 이 럴지도 몰라요. 단풍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그걸 볼 수 있는 심미적인 교육과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여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 감성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경우 아이돌에나 열광하지, 색깔의 변화가 아름답다 는 체험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생각도 사고도 고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완전히 꽉 짜여서 커버리기 때문에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것만 찾아갑니다. 즉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쥐 실험을 예로 들면 막 태어나 뇌가 커지고 있 는 그때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뇌를 절단해 보면 훨씬 발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때부터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틀을 갖춰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남규 제가 보기에도 우리 교육은 수능에 없으니까 미술 시간에 영어 공부해야 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감성적인 걸 가르쳐야 되고 배워야 하는 시기에 등한 시해버리니까 60세에 퇴직해 그림 같은 걸 배우면서 비로소 자기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뒤늦게 찾는 것입니다. 좀 더 일찍 가르쳐주면 인생의 황금기가 훨씬 풍요롭게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차두원 저는 인간공학이란 학문을 전공했습니다. 제품과 시스템, 서비스를 어떻게 사 람 관점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개발하느냐는 이슈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오늘 패널로 함 께 해주신 곽금주 교수님, 박남규 부장님도 분야는 다르지만 사실 사람이라는 대상을 연 구하는 분야인데, 우리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감성’이란 단어가 오늘 토론회에서도 자주 나오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감성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나 오고 있는데 실제로 인간감성에 대한 연구과제도 거의 없는 게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펀(fun)한 과학적 성과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언론에 회자가 되었지만 ‘초콜릿 소비량과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상관관계’ 같은 연구, 이런 재미있는 논문들은 우 리나라에서 왜 나올 수 없을까요? 이런 논문들의 역할이 과학문화 확산이나 실제 인간 특 성에 대한 이해 확산에도 매우 큰 기여를 하는데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과학기술이 경제 성장 중심으로 투자되다 보니 과학은 과학대로 도구화되고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 도와 행복에 대한 영향력도 낮아지지 않나 싶습니다.
  16. 16. 이언오 기업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경쟁을 보면 삼성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나고 생산성도 좋은데, 이미지와 창의성, 인터페이스에선 애플이 뛰어납니다. 우리 과학기술계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뛰어난 기능의 과학기술을 이제까지 수십 년 열심히 해왔는데, 지금 세상은 사람의 행복을 중시하는 방 향으로 바뀌었고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주가드’라는 혁신 관련 단어가 있습니다. 소박한 혁신이라는 뜻의 힌두어입니다. 즉 적은 자원을 들여서 사람들 에게 도움을 주는 적정 기술을 의미합니다. 그런 쪽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변화 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융합과 통섭입니다. 인문학 붐이 일 때 행복에 관한 키워드를 내세우면서 다른 분야도 같이 하자고 했으면 좀더 오래 갔겠지만 그 붐이 지금 돌아보면 인문학자들만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인문학이 중요하다면서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없어 붐이 죽어버렸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융합입니다. 공학과 기초과학의 융합. 과학기술과 인간 심리학, 혹은 법 과학과의 융합. 그런 노력들이 있어야 행복이라는 가치 에 더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아까 언급되었던 커뮤니티 활동도 중요합 니다. 제가 알기로는 과학기술계 쪽에는 시민단체가 없습니다. 한동안은 있었는데, 요즘 은 노조 외에는 과학기술자들끼리의 연계가 없습니다. 좌장 송하중 이른바 인터페이스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언오 제가 알기로는 노조 이외에 중립적이면서 긍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society가 미 국에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회 외에는 별로 보이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쪽에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좌장 송하중 저는 과학기술계를 떠나 2선, 3선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느끼 는 것이 과학기술계가 딱 자기 분야만 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 잘 알면 시끄럽거나 문제없이 살 수 있습니다. 화공과 교수님은 화공과만 잘 알면 되는 것입니다. 기계과가 어 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시간의 한 10% 정도만 할애해 주변에 뭐가 있나 살펴본다면 과학기술계 내에서 서로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 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기계과 교수하고 얘기하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을, 그걸 모르니 까 외국에서 사오는 겁니다. 기회가 없는 것이죠. 과학자들을 그렇게 키운 건 아니지만 그 렇게 살게 놔뒀던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급수 높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융합의 기회 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학자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분들이 교육 도 제대로 받고, 경험도 있지만, 제대로 서는 훈련을 못했습니다. 이것이 과학기술자들이 74_ THE SCIENCE & TECHNOLOGY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17. 17. 지금 행복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납니다. 인문 사회 분야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끌고 다녔던 것입니다. 결국 돈과 칼자루를 쥔 쪽에서 시키는 대로, 약간 이상해 도 따라가다 보니까 이제 앞장서서 가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건 행복하지 못합니 다. 과학기술계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차두원 융합을 이야기하셨는데요. 과거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한 산업경제 시절에는 하나 의 작업이 끝날 때마다 다른 작업자에게 전달되어 순차적으로 제품이 완성되었었습니다.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되고 다른 분야는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죠. 연구도 마찬가 지로 기초 -> 응용 -> 개발 -> 양산 등의 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이제는 이런 선형적 혁신 모델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디지털 기술 등의 발전으로 각 단계 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상호작용 혁신 모델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형적 혁신 모델 패턴으로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사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연히 각 단계별 칸막이가 존재해 융합이 발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지난해 포브스가 실시한 미국 대학평가에서 낯선 이름의 대학이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학부 중심의 소규모 대학 으로 전문대학원 등에 진학을 위한 폭 넓은 교양수업 중심의 인문대학인데요. 대학에서 교 육하는 인문학이라는 과정을 보면 생물학, 화학, 컴퓨터 사이언스, 지구과학, 생명과학, 물 리 등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초과학도 인문학의 일부라는 의미인 데, 우리나라는 인문학은 그냥 인문학으로 분리되어 있고 철학, 역사, 한문, 고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문학과들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 다. 당연히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떨어지고 과학을 통한 행 복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없다는 거죠. 이언오 아쉬운 것은 우리 사회가 실패를 경험하고서 학습을 통해 그것을 빨리 고치고 전 파시켜야 하는데, 세월호, 메르스 사태를 포함해 상당히 큰 실패를 하고도 고쳐지는 게 별 로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 책임도 큽니다. 미국에서 화성탐사선이 실패했을 때 파인만 이 조사위원장을 맡아 원인을 알아내서 재발방지책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 러 가지 실패들, 불행을 초래한 여러 가지 실패들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진지하게 규명하고 수정하면서 마이너스를 없애는 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부 터 임금 피크제, 메르스, 중국의 정치 혼란 등 여러 사건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누 적되고 있어 큰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도 내년 예산 긴축을 우려하 고 있는데 아까 주가드 혁신을 말씀드렸지만 예산 줄어드는 게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성과를 높이면 다음에 예산이 늘어나니까요.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며 과학 기술계가 자체적인 노력으로 먼저 해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과 기술 2015.11 _75
  18. 18. 76_ THE SCIENCE & TECHNOLOGY 좌장 송하중 지금 말씀하신 것은 말하자면 자체 정화인데 사실은 모두가 아니라 일 부분이 그러는 건데 비춰지기는 전체가 그러는 것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게 되는 겁니다. 이언오 자정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커뮤니티가 과학기술계 내에서 잘하 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에게 차이를 두고 이쪽은 존중해주고, 반대쪽은 불이익을 주는 풍 토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은 골고루 나눠주는 구조로 어떤 면에서는 자초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행복해지려면 자기가 노력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똑같은 행동 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정의했습니다. 행복에 대한 토론을 하 면서 행동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서 뭔가 기대하는 건 어렵지 않느냐, 그래서 우리 스스 로 노력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좌장 송하중 지금 말씀은 과학기술계가 자율 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인데, 저 역시 그 부분이 굉장히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데서 내린 결정에 따라 시키는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데, 실제로 덩치가 코끼리만큼 커졌음에도 그걸 모르고 아직도 사슴이나 개 정도 사이즈인 줄 알고 끌려가는 형국입니다. 무서운 코끼리가 돼 있어 이제 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주장해야 할 때이고, 그것이 제대로 되면 행복의 기초가 다져지는 셈이지요.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다면 비록 연구비가 적어도 스스로 관리하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이언오 또 하나 이공계에서는 지금도 일자리가 없다고 하잖습니까. 큰 책임 중 하나가 대학 교육입니다. 물론 경제 구조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것도 있지만 정말로 유능한 인력 을 키우면 해외로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선진국도 있고 개도국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대학이 정말 열심히 해서 학생들 일자리도 찾아주고 해외에서 유학생도 유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의 도전과 긍정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극복 하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행복입니다. 좌장 송하중 떳떳하고 투명한 과정을 거치면 열번 중 아홉번을 실패하더라도 한번은 성 공합니다. 그런 기대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나갈 수 있는 것인데, 우리가 쭉 훈련 받은 것 은 결과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게 우리한테는 아주 중요한 모토였으니까요. 아주 전형적인 결과주의죠.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19. 19. 과학과 기술 2015.11 _77 곽금주 사실 이렇게 하면 안 되더라 하는 실패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과정들을 쭉 밟는 시스템을 좀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언오 일자리 문제에 있어 연구기관과 정부가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 해 별의별 방안을 다 썼는데 다들 답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과학기술이 고민해서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고 일자리를 늘리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차두원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사실 기업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은 GDP 대비 34% 수준인 4천400억 달러, 무려 453조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 습니다. 물론 일본은 GDP 44% 규모인 2조 1천억 달러, 미국은 GDP의 11% 수준인 1조 9 천억 달러 규모를 보유한데 비하면 작은 규모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처럼, 현 재의 일본과 중국처럼 글로벌 M&A를 강하게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혁신적 R&D에 집중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나라 기 업들은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하고 수많은 석박사 과정들은 계약직으로 전전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인턴으로 선발되기 위한 과정이 힘들어 ‘금턴’으로 불리고, 불합리한 처 우로 ‘열정페이’를 불리는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열정에 넘치고 성 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 30대 친구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제가 89학번인 데 당시 대기업 인턴은 보통 3학년 여름방학 때 한 달간 경험하고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 으면 졸업 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회 후배들에게는 미안하지 만, 아마도 당시가 정상이고 현재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가 대기업 중심 구조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혁신’을 만들어 내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합니다. 정부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기업들도 본격 적으로 함께 해야 하고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박남규 마무리하겠습니다. 과학의 첫 출발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닐 겁 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에 기여하는 팩터(factor) 자체도 제한적이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도성장을 한 나라에서는 더욱 갭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 과학기술이 국민과 개개인의 행복에 연관될 수 있는 연구로의 변화를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와 국민 들도 과학이 능동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니만큼 과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 가 하는 교육과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가 사회 저변에 만들어져야 과학기술이 행복지 수와의 상관관계, 함수관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곽금주 전공 때문인지 몰라도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학문은 심리학으로 통한다. 과학이 처음에는 정말 인간의 질 높은 삶과 행복을 위해서 존 재했다고 하지만 융합이 안 된다는 것은 어느 순간 이기주의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전공
  20. 20. 의 이기주의화 또 정책과 부서의 이기주의화 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만 잘하면 된 다는 분위기도 있고, 지나치게 성과 위주로 가다 보니 정말 과학이 인간에게 지향적인 것 이 아니고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심리학도 마찬가지입니 다. 논문 쓰는 일이 때로는 사회에 그다지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 바로 응용되기에는 거리가 있는 아주 깊은 심리학실험에 의한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야 출판이 되고 업적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현상을 가지고 심리학으로 풀면 재미있지만, 그런 것으로는 전혀 출판은 안될 수 있습니다. 그저 신문 칼럼에 쓰일 정도인거지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심리학자들이 완전히 지하 실험실에 갇혀 연구만 하게 돼요.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 심리학자들 숫자가 많으니까 사회현상을 일반인이 와 닿는 연구를 하는 심리학자도 많습니다.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만, 지나친 성과 위주의 과학 이 지금 우리나라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게임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발달했 는데, 게임이 중독성 측면에서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초창기에는 공청회에 가서 많은 주장을 했는데, 지나치게 험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렇게 교수가 아무것도 모르고 얘기한다는 것이죠. 게임이 우리나라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제가 아예 근처도 가지도 않게 돼버렸습니 다. 정말이지 과학이 산업에 앞서 조금 더 인간 중심적인 과학으로 나아가야 과학기술의 행복도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진혁 경제력에 걸맞게 행복지수를 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명제 아래 영국이나 독일, 호주처럼 행복을 증진하는 방법, ‘더 행복하기’ 같은 운동을 국민적인 차원에서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적인 것이 개인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과 학적인 접근을 통해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해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올려야 할 시기입니 다. 오늘이 그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좌장 송하중 오늘 두 시간 동안 정말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줄 곧 든 생각이 우리 사회가 지금 산업사회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다가는 죽습니다. 개구리가 물이 따뜻해지는 걸 모르고 좋다고 앉아 있는 형국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바꿔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가 과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회 운영 방식도, 개인의 사고방식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는 것이야말로 편법 아닙니까. 내 말만 들어라 하고, 나하고 다르면 틀린 것이고, 이런 식으 로 해선 안 됩니다.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팩트를 확인하고 나는 이쪽에서 보고, 너 는 저쪽에서 본 다음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이 과학기술 이 사는 길이고, 과학기술자들이 사는 길입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과학기술을 공부한 사 78_ THE SCIENCE & TECHNOLOGY special features Ⅱ 특집 좌담회
  21. 21. 람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입니다. 즉 이들이 행복하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 이상이 행 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무리는 다음 세대가 바뀌게 해야 되고,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이언오 제가 오늘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왜 65세 이상 노인들한테 공짜표를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20세까지는 일은 안 하잖아요, 해야 아르바이트이고요. 그 렇다면 20세나 25세 정도까지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해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기성세 대가 많이 기여했지만 사실 부끄러운 것도 많습니다. 나이든 이와 가난한 이에게 복지와 연금 계획을 제시하는 시각에서 청소년들에게도 하다못해 대중교통이라도 마음대로 타고 가고 싶은 곳 가라고 하고 싶다는 고민을 해봅니다. 좌장 송하중 정말 생각에 따라 달려있는데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지하철 회사가 적자가 날 것이고 적자 보조를 해주는 게 서울시나 국가인데, 결국 국 민 전체가 부담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국민 전체가 동의하면 젊은이들 지하철 요금도 절 반으로 할 수 있겠죠. 그리고 65세 이상 지하철 요금 무료로 하는 건 고생한 세대에 우리 가 보상해주는 미니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회 보장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거든요. 이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빈 칸에 타서 천안 가고, 춘천 가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시비 걸지 말라고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언오 역사를 이야기하게 되면 젊은 세대와의 생각 차이가 커집니다. 같은 걸 놓고 바 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을 빨리 합쳐야 행복해집니다. 지금은 너무 벌어져 있습니다. 좌장 송하중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약간씩 분야가 다른데, 저는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속으론 생각했을지 몰라도 실 제로 말은 안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어딜 가도 말씀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결국 그 분야에 있는 분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액션을 취하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저도 제 분 야에서 액션을 취해서 전체가 틀이 바뀌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전체가 움직여야 항공모함이 움직이지, 어느 한두 군데만 바뀌었다간 방향을 못 잡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틀면 제대로 된 나라가 될 겁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과학과 기술 2015.11 _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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